1944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3월에는 결혼을 했고 7월에는 모교인 도쿄대 조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하늘이 시샘한 것인지 신혼생활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학도병으로 소집된다. 그는 학생도 아니었고 나이도 많았다. 하지만 급박한 전황(戰況)은 그런 개인적 사정까지 고려해줄 여유가 없었다. 결국 그는 일개 병정(이등병)이 되어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는다. 현해탄을 건너 그가 배치된 곳은 평양의 모 부대였다. 예나 지금이나 늦깎이 병정의 생활은 고단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지원병으로 입대한 조선인 고참이었다. 나이도 어리고 배운 것도 없고 조선인 주제에 오로지 짬밥을 더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정신적·육체적으로 갈구었다. 도저히 참기 힘들게 되었을 즈음 그를 구원해준 것은 각기병이었다. 결국 그는 이 병으로 인해 제대를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이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군대에 들어가면, 사회에서의 지위나 집안 같은 것은 소용이 없으며, 화족(華族)의 도련님이 노가다를 하던 상등병에게 따귀를 맞습니다. 뭐랄까 그런 의사(疑似) 데모크라시적인 것이 사회적 계급 차이에서 오는 불만의 마취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군대에서 경험한 평등의 정체를 가짜 민주주의로 해석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가짜였을까?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실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적어도 조선인 지원병의 경우 태어나서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경험한 곳이 군대였을 것이다.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도,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서민들이 근대 문물을 접하고 근대적 제도가 작동하는 원리를 배운 장소는 군대였다.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국은 군인이 군복을 입고 백화점에 가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만약 일본이라면 다들 놀랄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데 반해 한국 청년들이 사회에 관심이 많은 이유로 징병제를 지목한다. 원칙적으로 성인 남성이라면 모두 군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학생들이 큰 역할을 한) 민주화로 인해 군사문화가 극복되었다는 통념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즉 ‘군대(군대문화=전체주의) ↔ 사회(일반문화=민주주의)’라는 도식은 매우 안이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든 일본인 학도병의 다음과 같은 견해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사회적인 모순을 은폐하는 대일본제국이 자랑하는 민주적 역할… 출생이나 집안이 전혀 소용없는, 시험만 합격하면 무일푼인 아이도 제국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와 군대는 평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름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사진), 흔히 일본학계의 천황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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