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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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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기적

등록 2015-09-12 18:14 수정 2020-05-03 04:28

여기 이런저런 잡일을 전전하다 방직여공과 결혼한 남자가 있다. 남편이 신문에 실린 정치 기사를 마치 자신의 일처럼 떠벌리는 한량이었던지라 아내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홀로 전전긍긍했고, 당연히 부부싸움은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그들의 외아들은 가정형편 때문에 소학교만 졸업하고 잡심부름을 하는 소사가 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부모님을 도와 행상을 하며 군부대 근처에서 과자나 빵을 팔았다.
아들은 문학을 좋아하는 직공들과 사귀면서 소설 습작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란 조선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만두를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지인들은 당시 각광받고 있던 프롤레타리아문학이라며 칭찬했고, 그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학은 가난한 그에게 한없이 멀고 위험한 것이었다.
당시 고명한 문학가의 낭독회에 참석한 그는 절망감을 느낀다. “문학이란 고상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같이 소학교 출신이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잡지를 읽었다는 이유로 검거되어 구치소에서 10여 일간 고생하게 된다. 하나뿐인 아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것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그가 한푼 두푼 모아서 구입한 책들을 모두 불태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욕망을 모두 포기하고(그에게 ‘청춘’이란 사치였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묵묵히 살아간다. 그런데 1944년, 그의 나이 무려 35살에 당시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던 뉴기니로 보내질 병력으로 소집된다. 그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넌다. 뉴기니에 출발하기 전 경성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소집병과 합류하여 재편성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출발한 부대를 태운 수송선이 미국 잠수함의 공격으로 바다 한가운데에서 수장된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것이 마지막 배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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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처음엔 용산, 패전 직전에는 정읍)에 머물게 된다. 의무병이었던 덕에 약재 구입을 명목으로 바깥으로 나가 경성 곳곳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수 있었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누린다. 그리고 이윽고 종전. 그 역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뿐이었다.

그로부터 7년 뒤(그러니까 43살에) 그는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92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100여 권의 장편소설과 350편의 중단편, 그리고 수많은 논픽션과 역사에세이, 평론을 발표함으로써(출간한 책만 300여 권) 일본의 국민작가가 된다. 그의 이름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사진)로, 나는 그를 ‘문학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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