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관부연락선이 정박한 부산항 여객부두. 한겨레 자료
관부연락선은 부산(釜山)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운항하던 여객선이다. 이제는 소설 제목으로만 남아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모두 ‘부관(釜關)연락선’으로 바꿔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주의 소설 은 화자인 ‘나’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유태림이라는 인물의 전기를 쓴다는 내용으로, 그 전기에는 ‘관부연락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유태림이 남긴 수기(일본어로 쓰인 이 수기는 ‘나’에 의해 번역된다)의 제목도 ‘관부연락선’이라는 점이다. 즉 세 가지 관부연락선이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일단 여기서는 수기에 대해서만 조금 이야기해보자.
이병주의 소설적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유태림이 관부연락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38년 도버에서 칼레로 건너가는 배에서 갑판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였다. 영불해협을 자유롭게 오가는 양국의 국민을 보면서 그는 ‘같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존재했던 관부연락선을 떠올렸다. 일본인이 조선에 가는 것은 자유로웠지만,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복잡한 수속과 검문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그는 관부연락선을 연구함으로써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납득이 가도록 밝혀보겠다고 다짐한다.
관부연락선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인정받은 해인 1905년에 취항했다. 그리고 대륙 침략의 발판이자 수탈의 통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영광(출세)의 뱃길이기도 했다. 이때 그의 연구를 돕던 일본인 친구가 묻는다. “조선인은 이토 히로부미는 죽이면서 왜 송병준 같은 이는 천수를 누리게 했지?” 이에 유태림은 송병준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원주신을 다룬 신문 기사를 보여준다.
이를 계기로 ‘관부연락선에 대한 탐구’는 ‘원주신에 대한 추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일이었던 탓에 아무리 수소문을 하고 다녀도 성과가 없었다. 그때 뜻밖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내용인즉슨 원주신이 특정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비밀결사의 명칭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일본인을 만나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노인은 구한말 의병장 이인영이 붙잡혀 심문을 당할 당시 통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가 보여준 ‘심문문답조서’의 필사본을 읽은 유태림은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인영 의병대장과 그 동지들의 행동은 위대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하지만 인간의 집념, 인간의 위대함, 인간의 특질이 아나크로니즘을 통해서 더욱 명료하게, 보다 빛나게 나타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관부연락선에 대한 탐구란 이와 같은 슬픔에 대한 음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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