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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우리도 뚱이고 리우고 꾸미

술자리에서 탄생해 술꾼의 청심환이 된 <술꾼 도시 처녀들>, 미깡 작가를 만나다
등록 2015-01-01 15:53 수정 2020-05-03 04:27

나는 뚱이고 꾸미고 리우다. 뚱이처럼 금주를 수시로 선언하고, 꾸미처럼 옷을 사지도 가방을 사지도 않는데 매달 적자고, 리우처럼 술버릇이 전혀 없다(^^). 술친구들과 함께 뚱이들, 꾸미들, 리우들이 된다. 이제 마지막이라며, 못 먹겠다며 500cc를 한 잔 시켜 나눠 먹다가 결국엔 또 시키고 또 시킨다.

“소주 혹은 맥주, 폭탄은 안 합니다”

금요일 아침 알람을 받고 숙취로 구름이 잔뜩 낀 머리를 모니터에 바싹 들이밀어, 이 세상에 나 혼자 외롭지 않구나 안심한다. 술꾼들의 청심환, 안심단, 이다.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 중인 이 만화의 단행본이 나왔다(위즈덤하우스 펴냄). 술 마실 건수다. 술꾼의 촉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인터뷰 신청을 한다. 한편으로는 긴장한다. 호적수다. 마포 두 술꾼도시처녀들 집단의 불꽃 튀는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미깡 작가에게 오케이 사인이 온다. 한겨레신문사 건물 일대의 술꾼 여자들에게 그날 약속을 비우고 집결하라, 사발통문을 돌린다.

왼쪽부터 〈술꾼 도시 처녀들〉의 리우, 꾸미, 정뚱. 위즈덤하우스 제공

왼쪽부터 〈술꾼 도시 처녀들〉의 리우, 꾸미, 정뚱. 위즈덤하우스 제공

결전의 장소는 회사 앞 껍데기집이다. 이 껍데기집으로 말씀드리자면 의 장그래와 오 차장, 김 대리의 체온이 남아 있는 곳이자(드라마에서 2회씩이나 이곳에 온 그들의 먼지가 모두 사라졌을 리가 없다, 날씨가 추우니 환기도 잘 안 할 터이니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사장님께서 언제나 “우리 아가씨들” 하는 곳이다. 미리 가서 구두로 예약도 마쳤다. 으로 손님들이 밀릴 터이니 단골손님 빽으로 자리를 하나 구하려 했는데, 웬걸 PPL이 아니어선지 예약이 없다. 약속시간, 연탄으로 까만 가게로 들어오는 여릿하고 하얀 얼굴.

미깡 작가는 시즌1이 끝난 뒤 담벼락을 통해 “술도녀 3인방 가운데 과연 누가 작가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고백하자면 저는 그 누구도 아니면서 동시에 셋 모두입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묻는다. 프리랜서니까 꾸미가 제일 비슷하지 않나요? 머리도 비슷한 것 같고. “칼 같은 성격은 뚱이고요, 고양이 보고 싶어서 징징대는 건 꾸미요. 술이 맛있어서 먹는 건 리우?” 더 궁금한 것은 주량이다. “소주 1병에서 3병 사이요. 컨디션에 따라서 다른데 그 정도.” 주종은? “소주 혹은 맥주요. 폭탄은 안 합니다.” 결혼도 하셨다면서요? “네, 남편이 ‘술도녀’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음악을 작곡해주었답니다. 직업은 재즈 뮤지션요.” 우린 그냥 팬클럽이었다.

곧 목소리가 걸걸한 미깡의 친구가 껍데기집에 도착했다. 으스스한 동화작가의 모델이다. 진짜 직업은 패션지 기자. 미깡에게 ‘맥주천재’라 불린다. “여기서 주는 쑥물이 맛있어요.” 좌중 두리번두리번. “그리고 여기 닭똥집이 맛있어요.” 아, 그래요?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여긴 우리 회사 앞이라고요.

‘순정만화’ 보다가 만화를 그리다

만화도 술자리에서 탄생했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그냥 우리가 하는 짓 그대로 찍으면 홍상수 영화인데 말이야’라는 말을 수시로 하곤 했죠. 소설로도 구상해보고 영화로도 구상해봤는데 그냥 제가 끄적거릴 수 있다는 이유로 만화를 그렸죠.” 프리랜서로 잡지사 일을 하던 중이었다. 계간지 하던 때라 두 달 일하고 한 달은 여유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미디어다음 게시판에 올렸다. 몇 회 올리니 다음 계간지 마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 이제 그만 그릴까봐.” 친구에게 말했다. “계속 그리지.” 곧 게시판을 봤다며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몇 회분 안 되지만 출판하시죠.” 곧 만화속세상 담당자한테도 파격적인 제안이 왔다. 웹툰 리그로도 가지 않고 만화속세상으로 직행했다. 그게 2014년 초의 일이다. 시즌1은 일주일 세 번, 시즌2는 일주일 두 번, 2014년 11월 말에 시작한 시즌3은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되고 있다.

껍데기집에서 술집 처녀들이 뭉쳤다.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꾸미’랑 닮았다는 비밀을 대대적으로 공개한다. 정용일 기자

껍데기집에서 술집 처녀들이 뭉쳤다.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꾸미’랑 닮았다는 비밀을 대대적으로 공개한다. 정용일 기자

12월26일 금요일 만화 등록 알람을 받고 들어간 편에는 벌써 ‘추천’이 388개다. 독자는 뚱이고 리우고 꾸미였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감을 흡입했다. 예를 들면, 8화의 뚱이의 술버릇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자기고백 댓글이 주르륵 붙는다. “꼭 당구장갑 집까지 끼고 오는 거로 공감된다.”(신희찬님), “테이블에 붙어 있던 벨 뜯어온 적도…”(윤수진님), “오늘에야 알았다. 우리 집에 왜 탬버린이 8개나 있는지…”(dreamer님), “곱창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술 마시고 그대로 앞치마 두른 채 강남 한복판 돌아다님. 근데 같이 논 사람들, 아무도 의식 못함. ㅋ...ㅋ”(mama님).

댓글을 통해 독자들의 제보도 많지만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제보로 들어오면 아 쓰려고 했는데 못 쓰겠다 싶어요. 캐릭터들과 맞는 에피소드를 구성해야 해요. 댓글 즐겁게 읽고는 그걸로 끝입니다.” 뚱이와 리우, 꾸미를 한 번도 헷갈린 적이 없는 것은 확고한 캐릭터를 만들어놨기 때문인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만화를 잘 그리면 못 그릴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림을 못 그리니까 처음에 시작할 때 각자 특색을 주었죠.” 뚱이는 미간 주름, 리우는 긴 노란 머리, 꾸미는 안경을 쓴다. 그렇게 옷도 바꿔 입지 않는다는 ‘술도녀’의 진실.

미깡의 만화 경력은 ‘순정만화 열심히 보기’가 다다. 처음 어떻게 하는 줄 몰라, 손으로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한 뒤 스캔해서 올렸다. 그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톤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미술 하는 오빠가 넌 못 그리니까 손맛을 내는 수밖에 없다. 요즘에 웹툰 손으로 그리는 사람 5%도 안 될걸요.” 그리고 충격 선언. “이번 작품 아니면 만화는 다시 안 그릴 것 같아요.” 그 말에 눈물을 떨굴 듯한 팬에게 그는 말한다. “다른 그림작가를 구하거나….”

“술은 매일이 걸린 문제니까요”

스포일러 하나 추가하자면, 뚱이는 술 못 마시는 한잔씨랑 헤어질 것 같다. “사상이나 종교가 다르면 서로 의견을 교환해가며 설득해가며 살지만 술은 매일이 걸린 일이잖아요.”

미깡의 친구는 다른 술자리로 갔고 우리 건물의 술꾼 처녀들은 이미 사라졌다. 한 차수를 더한 뒤 마지막 생존자가 문자를 타전했다. “지금 취해서 안주전활 걸순없네요” 몇 번이나 고쳐쓴 문자인데 오타가 생겼다. 돌아온 문자는 금방이었고 여유로웠다. “히히힛 기자님~~ 저 잘 들어왔어요 넘 즐거웠어요 ^ㅁ^”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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