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엔 나이 제한이 있다. 그러나 구하는 것은 젊은이가 아니다. 구인광고 속에선 백발의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일하고 있다. 남녀 불문 60살 이상인 고령자만 구하는 기이한 구인광고다. 일본 기후현 나카스가와에 자리잡은 판금 가공회사 ‘가토제작소’의 직원 절반은 60살 이상의 실버직원이다. 2001년 처음 은발의 노인들을 공격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이 중견업체는, 고령자를 채용한 뒤 회사 매출액이 3배 가까이 뛰었다. 구미의 언론도 이 업체의 성공을 앞다퉈 보도했다. 가토제작소의 가토 게이지 대표가 쓴 (북카라반 펴냄)는 지난 13년 동안의 성공적인 ‘실버 고용’ 노하우를 집대성한 매뉴얼이다.
84살 할아버지가 면접 보러 가는 곳
2001년 당시 일본 경제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가토제작소엔 주문이 밀려들었다. 낮은 단가와 짧은 납기를 맞추기 어려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직원들의 잔업과 휴일근무에 의존하기도 어려웠다. 수당을 지급해선 수지가 맞지 않았다. 외곽 지역인 터라 주말에만 일할 젊은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발상을 전환한 이는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당시 전무를 맡고 있던 가토 게이지다. 월~금요일엔 현역 직원들이 일하고 주말에는 실버직원을 중심으로 일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노인들은 평일에 소일거리로 바쁘지만 주말이라면 오히려 한가하다. 임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가토는 전적인 책임을 지기로 약속하고 밀어붙였다.
“주말은 우리의 평일”이라는 구호를 달고 첫 구인광고가 나갔다. 합격하진 않았지만 84살 할아버지까지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15명이 최종 고용됐다. 당시 15명이던 실버직원은 50명이 넘어 전체 직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저자는 “그것은 많은 노인들의 복음”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가토제작소 직원들의 평일 평균 나이는 39살이지만 주말 평균 나이는 65살이다. 그렇게 ‘연중무휴’ 공장이 탄생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노인 고용을 단순히 고령자 생계를 위한 일자리 창출의 전략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본질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사회에서의 네트워크가 소실된 시대에 은퇴는 곧 사회적 죽음을 뜻한다. 나이가 들어도 인정 투쟁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노동을 통한 사회적 관계의 복원은 고령화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정신적 활력을 유지해가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노인 고용은 실버직원의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전략만 있다면 업체 차원에서도 윈윈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가토제작소의 경험에 따르면 오랜 사회생활 경험을 가진 실버직원들은 기술을 배우는 데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내심과 도덕성, 책임감이라는 직업윤리 측면에서는 젊은이들을 리드할 수 있었다. 기존 직원이 정년인 60살을 넘길 경우 계약직 실버직원으로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기존 직원의 사기도 높일 수 있었다.
암울한 노동, 한국적 현실에선성공 사례를 읽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갑갑한 이유는 그것이 한국의 현실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 때문이다. 몇 주 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속적인 멸시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50대 경비노동자가 분신을 기도했다. 비정규직 임금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노동 현실 속에서 ‘가토제작소’ 이야기를 벤치마킹할 이웃나라의 모범사례이기보단 어느 먼 나라의 동화쯤으로 읽게 되는 이가 비단 나뿐일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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