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룀처럼 몇 년 동안 열대에서 산 사람들의 동성애는 다르게 보아야 해요. 당을 위해서는 군부와 연줄이 닿아 있는 룀이 소중합니다. 비밀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는 그의 사생활에 아무 관심이 없어요.” -히틀러
‘히틀러운동’의 긴장과 보수 동맹의 긴장나치에 동성애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나치는 동성애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을 선포했지만, 나치당의 행동조직인 돌격대의 수장 에른스트 룀은 동성애자였고, 히틀러는 룀을 비롯한 나치 내 동성애자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나치즘과 동성애의 관계가 간단치 않았던 것은 룀과 같이 나치 내에 동성애자 몇몇이 속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치는 여성이 배제된 남성 전사들만의 공동체라는 ‘남성동맹’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한 운동이었다. 영혼마저 하나가 되는 남성들만의 단일대오라는 특징은 집권 이전만이 아니라 집권 이후에도 나치즘을 규정했다.
나치시대 전문가인 김학이 동아대 교수(사학)의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시기에 출판된 책과 신문기사, 동성애자들의 수기, 게슈타포의 수사기록, 법원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나치즘과 동성애는 어떤 관계였는지, 나치 체제는 어떤 성을 생산해내려고 했는지 분석한 책이다.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된 뒤 나치의 동성애 정책은 인구 증가를 목표로 한 생명 정책과 ‘남성동맹’으로서 정체성 사이의 긴장 속에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는 인구 증가와 도덕성 회복을 고집하던 보수 세력과 함께 집권했다. 히틀러 정부는 ‘히틀러운동’ 내부의 긴장과 보수 동맹 세력과의 긴장이라는 이중적 문제에 봉착했다. 이 책은 이 긴장 속에서 나치 동성애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고 또 변화하는지에 주목한다.
스스로를 남자들 간 영육의 결사체, 즉 ‘남성동맹’으로 이해하던 나치는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공격할 수 없었다. 남성동맹과 동성애 사이의 경계가 원체 흐린 탓이었다. 나치는 결국 동성애자들을 법적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동성애가 법에 넘겨지자 법이라는 ‘체계’의 고유한 원칙과 절차를 준수해야 했다. 게슈타포는 증거를 찾아내야 했고, 그 와중에 고문을 했다가 피의자가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발설해버리면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는 일도 벌어졌다. 나치는 동성애에 관한 한 법외적인 ‘자의적 국가’가 아니라 법적인 ‘규범적 국가’였던 것이다. 그 규범적 국가는 나치가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그 와중에 소련군 포로, 유전병 환자, 집시,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필수적인 힘과 노하우를 공급하던 국가였다. 따라서 나치는 규범적 국가를 훼손할 수 없었다.
국가의 틈새를 이용한 동성애자들저자는 나치 국가의 그 틈새를 남성 동성애자들이 천연덕스럽게 이용했다고 말한다. 나치 치하에서도 그들은 공원과 공중화장실과 동성애자 전용 술집에서 파트너를 만나고 대화하고 연애했다는 것이다. 나치가 일상의 자율성을 없앨 수도 그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없었다는 주장은, 나치시대 일상사에 관심을 보여온 저자의 학문적 이력을 감안하더라도, 나치 체제의 폭압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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