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몸쓰기’보다 ‘말하기’가 좀더 우점종인 듯하다. 복수의 남녀가 만나 속물적인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면 ‘리얼’이라는 표현이 과한 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출연자들은 더러 구설에 휘말리기도 하는데, 극단적으로 한 인기 여가수는 가족과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 진실 말하기에 따르는 필연적인 비용이었을까. 하지만 동료 장자연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입 한 번 열지 않은 그 많은 연예인 출연자들을 보면 그 ‘리얼’이라는 것이 실은 객쩍은 사담 이상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의 차이‘파르헤시아’(Parrhesia). 미셸 푸코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이 말을 ‘진실의 용기’라고 번역했는데, 편의적으로 이해하면 진실을 말하는 데는 비상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담기관이 내담자의 신원에 대해 비밀 엄수를 철칙으로 삼고,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음성 변조와 얼굴 모자이크가 흔한 표현 양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진실 말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하는 것과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진실의 차원에서 같을까 다를까.
사람 매거진 11월호(창간 1주년 특집)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이 등장한다. 언론은 대개 친족 성폭력 사건을 짧게 기사화하고 만다. 피해자가 주어가 되는 경우는 없다. 그나마 지난해 친족 성폭력 피해자 수기가 국내에서 처음 발간된 뒤, 가 필자를 인터뷰해 익명으로 보도해 주목받았다. 기사 제목은 “아버지의 성폭행에도 난 더럽혀지지 않았어요”였다. 그런데 은 피해 여성의 얼굴을 책 표지에까지 크게 실었다. 표지 제목은 ‘내 몸, 진실 말하기’이고, 본문 제목은 ‘나는 말했다, 원한이 아닌 진실의 힘으로’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두 보도를 대비할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 피해자는 사실을 말했으나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여전히 남성 가부장의 눈으로 타자화된 진술이라는 점에서 ‘더렵혀졌다’와 다르지 않다. 또 다른 피해자는 주체의 위치에 서서 말한다. 전자가 ‘사실’을 말할 때 후자는 ‘진실’을 구성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피해자의 정체성에서 해방시키고 자신의 삶을 자유의지로 헤쳐나간다. 진실은 주체에 의해 완성되고, 진실의 가치는 그 주체를 통해 빛을 발한다.
“돌고래(친족 성폭력 피해 여성)의 진실 말하기는 치욕, 불안, 고립, 파탄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지만 세상을 향해 존재를 개방함으로써 삶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었다. 돌고래는 힘이 있어서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낯선 호기심으로 수용해 생이라는 힘들의 바다 위를 유영한다.”(본문 내용 재구성)
‘적색’의 미래 ‘녹색’일 수밖에한편, ‘나들의 초상’에서는 생태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형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귀촌하는 이유와 숲 전문가에서 도시 공동체 기획자로 존재를 이행한 이강오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총장이 서울로 돌아온 이유가 결국 하나라는 걸 보여준다. 10년 전 전북 부안에서 방폐장을 막아내고 그곳에 정착한 고길섶 전 문화연대 편집위원장의 밀양 방문기도 실었다. 끝으로, 앙드레 고르의 ‘정치적 생태학’을 소개하면서 ‘적색’의 미래가 ‘녹색’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이번호 은 1인칭 주어들이 연대하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자이크화처럼 보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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