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 공포증’ 환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 개에 물려 오후반 수업을 못 간 적이 있고, 그해 어느 일요일 교회 가자고 들른 친구 집 개에 물려 고약 같은 걸 바르고 교회에 간 기억도 있다. 이후 지독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거리에서 개가 눈에 들어오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부터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움칫하는 개도 있지만, 되레 짖으며 덤비는 개가 더 많았다. 그때마다 낯선 이들이 ‘구조’해줬다.
나의 개 공포증이 눈에 띄게 호전된 건 방콕에서다. 방콕에 다녀간 이들은 알겠지만 방콕, 아니 타이 전역은 ‘개판’이다. 식당 안팎, 편의점 입구는 개들의 대표적 휴식처.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진 않는다. 천만다행인 건 좀처럼 짖지 않고, 대부분 ‘ㅠ’ 자로 누워 잠을 자거나 늘어져 있다는 점. ‘보기만 해도’ 소리 지르던 나는 이제 ‘짖지만 않으면’ 개 옆구리를 차분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2년 전 대홍수 때 ‘사람 품에 안겨 탈출하는 개’ 장면에 감동받은 내게 ‘방콕 개판’은 ‘힐링캠프’가 되었다. 그렇다면 타이는 개의 천국인 걸까?
통계에 따르면, 방콕 유기견 수는 약 30만 마리로 추산된다. 2년 전 방콕시 보건국장 아무개 박사가 “사람들이 강아지는 좋아해도 성장한 개, 특히 임신까지 한 개는 거리나 사원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던 말에 약간의 실마리가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는 듯하지만, 실상 유기견으로 인한 불편함을 신고하는 건수도 매년 4천 건에 이른다. 시 보건 당국이 운영하는 ‘개·고양이 쉼터’는 1천 마리밖에 수용하지 못하기에 웬만해선 넘보기 어려운 자리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찬밥 신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이따금 ‘개 밀수 단속, 5천 마리 해방’ 같은 뉴스가 나오면 그들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기견과 도둑맞은 개 등 매년 20만 마리의 타이 개들이 밀수단의 손을 타고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개고기 식당으로 팔려간단다. 온몸을 짓누르는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온갖 학대 속에 팔려간 베트남 시장에서 60달러에, 개 식용이 불법인 타이에서보다 6배 더 많이 받고 팔린다. 당국의 단속으로 수천 마리가 해방돼도, 이들을 거둘 시스템이 취약하기에 다시 거리로 흘러가고 다시 베트남으로 팔려가는 경우도 많다는데. 인간은 팔려오고 개는 팔려나가는 타이 ‘지하시장’엔 ‘개 같은 (인)생들’이 교차선을 긋고 있다.
유기견 보호 비정부기구(NGO) ‘소이도그(골목 개)파운데이션’(soidog.org)은 이런 문제에 대한 응대로 생겨났다. 불임 주사를 놓아 과다 번식을 막고, 타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개 입양 캠페인’도 벌인다. 개 입양, 그건 인간에게 가장 충실하다는 동물, 개에 대한 예의의 한 표현이 아닐까. 어쩌면 내 병의 완치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경 방콕 통신원·방콕에서 ‘방콕하기’ 10년차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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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