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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떠진다. 새벽 3시. 새색시처 럼 공들여 단장부터 한다. 주먹밥 두 개를 만들어 허리춤에 찬다. 대문을 나 선다. 갈 길은 먼데 다리가 비척거린다. 구부정한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든 다. …아침 6시 어느 산등성이. 젊은 육신이 면 왕복도 했겠지만, 기다시피 해서 3시간 만 에 겨우 올랐다. 그래도 질 수는 없다. 작대기 를 탁탁 치며 젊은 용역들에게 사자후를 한다. …김말애. 세는 나이로 올해 여든여섯. 그녀가 오른 산 은 높이 100m가 넘는 송전철탑이 들어설 터였다. 그녀 는 죽을 생각으로 갔고, 죽는 대신 죽을 힘으로 싸웠다. 공사는 지금 잠정 중단 상태다.
사람매거진 7월호가 경남 밀양 송전탑 사태 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관련 지면이 30쪽을 훌쩍 넘는 다. 사실 밀양 사태가 아주 신선한 소재라고 할 수는 없 다. 진주의료원 강제 폐원 사태와 함께 최근 전국적 이 슈가 된 대표적인 ‘지방 소식’ 아닌가.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충분치 않은 것이 단지 분량의 문제라면 더 많이 보도하면 된다. 하지만 은 밀양 사람들을 모르면 밀양 사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김말애 할머니처럼 농사일만으로 한 평생을 산 그곳 사람들이 송전탑 반대 싸움에 왜 목숨까 지 거는 걸까.
밀양은 보수적인 지역이다. 선거 때마다 ‘1번’ 찍는 것 을 도리로 삼아왔다. 그들이 투쟁하는 여러 이유를 일 렬로 늘어놓으면 선두권에 ‘조상’이 포진하고 있다. 그들 이 “돈 필요 없다”고 외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송전선과 송전탑은 조상이 쉬는 유택과 조상이 물려 준 삶터를 살뜰히 도륙한다. 조상에게 보상비를 바쳐봐 야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 지키지 못하면 “죽어서 조 상 뵐 낯이 없”으니 “죽는 게 낫다”고 여긴다. 그들은 지 금 보수적 가치로 가장 급진적인 투쟁을 수행한다.
‘급진성’은 맨몸으로 중장비를 막아서고 밧줄 올가미 에 스스로 목을 드리우는 그들의 투쟁 방식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이 나무는 나보다 오래 살아왔다. 이것들 다 베어내고 나면 너희는 어디 기대고 살래?” 기술적 전문 지식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그들의 직관과 감수성, 그리 고 온몸으로 타전하는 메시지를 형용하는 것이다. 그들 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스노비즘 사회에서도 끝내 화 폐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저항으로 보 여주는 급진적 주체들”이라고 은 말한다.
그렇다면 전기를 스위치가 붙은 벽 뒤, ‘거기 항상 있는 것’으로 감각하고 살아온 도시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무 구한 존재일 수 없다. 전기의 진실을 감각하지 않음으로 써 밀양 사람들을 대속의 제물로 삼는 과정에 동행하게 된다. 밀양만이 아니다. 다수가 소수를, 강자가 약자를, 자본이 시민을, 서울이 지방의 특정 지역을 찍어 공동체 와 생태를 파괴하고 수탈하는 방식은 지금도 제주 강정 마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경기도 평택 대추리, 새만금, 그리고 원전 지역에서 벌어진 지독한 동어반복이었다.
‘밀양 사람들’이라는 텍스트를 읽었다는 건 이제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직관·감수성에 연루됐다는 뜻일 것이 다. 어느덧 보통명사가 된 ‘밀양’이 우리에게 걸어온 말에 귀를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여 부는 7월8일 전문가 협의체에 의해 결정된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나기 전에 무언가 해야 할 존재는 더는 밀양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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