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쿠로는 미키마우스를 베껴왔다. 1920~30년대 일본의 완구용 영사기에서 상영되는 29초짜리 애니메이션에서는 미키마우스와 노라쿠로가 함께 등장한다. 일본 제작, 연대 불명.
취지는 좋은데, 서브컬처 소비자들이 들끓는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때문이다. 서브컬처 소비자들이 당황해하는 건 개정된 2조 5항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의 정의를 아동·청소년이 등장한 경우에 한하지 않고,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확대해버린 것이다. 특별히 법조항에 관심도 없던 이들이 뒤늦게 모든 2D 캐릭터들이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취미가 범법으로 돌변하는 스펙터클 호러쇼의 주연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대됐다.
서브컬처 소비자들을 집단 공포에 빠트린 건, 이 법이 취지에 맞게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포르노 만화나 애니메이션(법 개정 이전에도 불법이고, 지금도 불법인)을 단속한다는 소식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동안 허용된 성인만화에서 교복을 못 그려서도 아니었다. 청소년용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청소년이거나, 혹은 청소년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시각적 판타지가 모조리 금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캐릭터들은 눈을 키우고, 코를 줄여 유아적 비율로 동물 캐릭터를 개발한 20세기 초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서 나왔다.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펠릭스 더 캣’이나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는 1920~30년대 일본에 건너와 ‘노라쿠로’(개), ‘단키치’(소년), ‘코로스케’(곰) 같은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 캐릭터들은 고스란히 전후 데즈카 오사무 만화의 조형 원리로 이어진 뒤 오늘날 이른바 ‘모에’ 캐릭터가 되었다. 모든 만화의 인물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주제에서 이야기하는 2D 캐릭터들은 대부분 현실의 그들이 갖는 특징이 제거되고 기호화된다. 심지어 흔히 실사체라고 이야기하는 만화도 어느 정도의 기호화를 거친다. 누구도 미키마우스를 보고 현실의 ‘쥐’를 떠올리지 않듯, 귀엽고 어리게 그린 2D 캐릭터를 보고 현실의 소녀를 떠올리지 않는다.
애초에 불법 성인 콘텐츠는 현행법에 따라 단속하면 된다. 아동과 청소년이 성인 콘텐츠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살아 있는 그들을 보호하면 된다. 그런데 명백해야 할 규정을 더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바꿔버렸다. 설마설마하지만 워낙 세상이 험해 취향을 감추고 싶어 하던 소비자들이 술렁거린다.
미국의 경우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2D는 단속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브컬처 소비자들이 즐기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의 2D와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2D는 출발이 다르다.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미지의 뿌리는 실재 그들이다. 그런데 이쪽은 미키마우스에 뿌리를 두고 일본에서 꽃피운 기호의 집합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섹슈얼한 2D 캐릭터가 (어려 보이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된다면, 그건 쥐를 잡자며 미키마우스를 잡는 꼴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좀 창피하다. 그러니 일단 우려를 없애자. 방법은 간단하다. 아청법 2조 5항을 바꾸자.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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