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에서 모두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만화의 만(漫)자는 흩어지다, 질펀하다, 방종하다 등의 뜻이 있다. 딱딱한 규범과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그림에 퍽 어울리는 한자다. 이 용어의 어원을 따지면 대개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의 (北齋漫画)와 만난다. 는 ‘만화’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출판물이다. 따라서 만화의 원류를 로 보기도 한다.
명쾌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는 만화의 원류가 아니다. 만화라는 도도한 강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물줄기 중 하나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1814년에서 1878년까지 모두 15편으로 출간된 는 인물·풍속·동물·요괴 등을 그린 4천여 편의 그림을 묶은 작품집의 이름이다. 편안하며, 자연스럽고,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에서 ‘만화’라는 용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즈음 일본은 개항(1854년 미국과 화친조약),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1868년) 이후 메이지 정부가 등장해 서구 문물을 도입한다. 자연스럽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에서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만화도 근대 매체와 함께 도입되었다. 코믹스를 어떤 이름으로 번역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만화’가 선택되었다.
만화의 원류를 이야기하다 보면, 경쟁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를 넘어 헤이안시대의 두루마기 그림을 원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2~13세기 작품인 (鳥獸人物戱画)를 만화의 원류로 말하는 이도 있다. 다양한 동물을 간명하면서도 역동적이고 유쾌하게 묘사한 작품이기는 하나 만화로 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도 질 수 없다. 조선시대 풍속화나 민화, 그림과 글로 불교 경전을 쉽게 풀어 설명한 고려시대 사경변상화, 심지어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와 경북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단 선으로 된 그림이면 모두 만화의 아버지로 낙점받는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그 시대의 작품들에 “당신이 만화의 아버지야!”라고 말하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만화는 철저하게 근대적 발명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만화라는 명칭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풍속화 작품집 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발명한 용어인지, 아니면 에도 후기에 자연스럽게 사용한 용어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아무튼 공식적으로 확인된 단어의 출발은 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 잡지·신문 같은 근대 매체가 창간되고, 유럽과 미국의 만화가 소개되었다. 추측건대, 누군가 코믹스의 번역어로 만화를 찾아냈을 것이다.
출처는 지만, 형식적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만화와 는 같은 직접적 혈연관계라 보기 힘들다. 구태여 찾자면, DNA 구조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은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만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동굴벽화? 이집트 파피루스?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고려시대 사경변상화? 궁금하면, 다음 순서를 기다려주시기를.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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