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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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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등록 2012-12-04 18:50 수정 2020-05-03 04:27

‘한낮의 어둠’이었다.
11월28일 낮, 서울 용산구 남영동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경찰청 인권센터(옛 치안본부 대공분실)는 스산했다. 영화 는 흥행이라는데 정작 ‘남영동’엔 사람이 없었다. 경찰관의 안내로 당시 피의자가 드나들던 후면 철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섰다. 침침한 실내에서 갑자기 어둠이 끼쳐왔다. 방향을 180도 틀자 곧바로 5층 조사실로 직행하는 2인용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김근태들’을 실어 나르던 승강기였다. 그의 수기 에 묘사된 대로 협소했다.

복도 끝 철창에서 남영역 플랫홈이 보이는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모든 문을 똑같이 만들어서 행여 피의자가 도망을 치더라도 어디로 들어왔는지, 나가는 문은 어딘지 알 수 없게 설계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대표적인 현대건축가 김수근이었다. 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따져물었다.

복도 끝 철창에서 남영역 플랫홈이 보이는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모든 문을 똑같이 만들어서 행여 피의자가 도망을 치더라도 어디로 들어왔는지, 나가는 문은 어딘지 알 수 없게 설계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대표적인 현대건축가 김수근이었다. 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따져물었다.

야만의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바로 그 옆에 원형 계단이 있었다. 안내 책자에는 “1층에서 5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이 계단을 통해 피의자들은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 위치 감각을 상실한다”고 쓰여 있었다. 계단에 올랐다. 따라오던 경찰관은 5층에서 만나자며 자리를 피했다. 눈을 감았다. 손잡이를 더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몇 층이나 올라왔을까. 어지러움 뒤로 공포가 스멀거렸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호흡은 가빠졌다. 가까스로 계단 끝을 확인했을 때, 기진맥진했다.

원형 계단 출입문을 닫고 5층 조사실 복도로 몇 걸음을 옮기자 방금 들어왔던 복도 중간쯤에 있던 문을 알 수 없었다. 모든 문을 똑같이 만들어서 어디로 들어왔는지, 나가는 문은 어딘지 알 수 없게 설계한 까닭이었다. 피의자가 운 좋게 조사실에서 도망쳐나와도 탈출은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처럼 건물의 ‘기능적 측면’을 고려한 치밀한 설계는 조사실의 비대칭적 배치에서도 확인된다. 5층 조사실들의 모든 문은 서로 엇갈려 있는데, 이는 마주한 조사실의 문이 동시에 열려도 맞은편 조사실에 갇힌 이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방마다 설치된 철제 흡음 시설과 투신 방지 창, 방 안을 들여다보는 투시경 등도 이 건물의 ‘용도’를 뒷받침하는 세심한 장치들이었다.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물고문 끝에 숨진 509호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김근태 의장이 23일 동안 고문받은 515호에 들어갔다. 적막했다. 참혹한 적막이었다. 인간의 모든 것을 파괴한 야만의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이는 알려진 대로 한국 현대건축의 상징인 김수근이다. ‘검은색 벽돌과 돌출창, 거대한 벽면을 파내 만든 안마당 등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적인 건축언어가 모두 발견’되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의 대표작인 ‘공간’ 사옥(1971)의 ‘샴쌍둥이’로 불린다. 대공분실이 완공된 1976년 10월, 그는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이었다. 1963년 자유센터, 1977년 올림픽 주경기장, 1983년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86년 치안본부 청사 등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스승 격인 김중업에 견줘 김수근이 건축주인 독재정권과 더 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건축가의 처지에선 모든 건축이 개인의 창작 활동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가도 사회 구성원 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적 관계 아래 있다고 할 때, 그 의 창작 활동 자체가 사회와 무관하다고 말할 순 없다.

나쁜 사회서 좋은 건축 나올 수 없어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진인진 펴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축이 사회 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보자면, 좋은 건축을 위해 서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투기적 이득을 노린 상호 가해적 개발 이 당연시되는 투기사회, 격렬한 생존 투쟁 속에서 난개 발이 만연된 난민사회, 국토 파괴와 혈세 탕진과 부패 촉 진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토건국가”에서 좋은 건 축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건축의 사회 성’이라고 부른다.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난개발’로 대변되는 조악한 건물들은 건축과 사회의 왜곡된 관계의 귀결일 뿐이다.”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 사회에서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사회학자인 저자가 건축 관련 책을 펴낸 이유 도 여기에 있을 터.

하기야 학문과 실천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벌여 온 저자의 관심사가 주로 토건국가와 위험사회, 환경, 문 화 등에 걸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홍 교수의 ‘건축 사회학’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문화연대에서 건축·도시·공간의 개혁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얻게 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건축전문 잡 지에 연재했던 12편의 원고들과 추가된 4편의 글을 모아 엮었다. 정치·경제·일상·여성·군대·예술·도시·광장 등 다양한 분야와 건축의 관계를 분석한 대목이 책의 지 붕이라면, 기존 건축학개론서엔 담기 힘들었던 인문사 회과학적 지식은 책의 기둥을 이룬다.

여기서 저자는 건축과 사회의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 기 위한 실마리로서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주목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하지 않을 책임 말이다.

단순히 재산 증식의 수단이나 위정자들의 치적을 위 한 상징 정도로만 여겨지던 ‘건축’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 이 책은, 결국 건축(가)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말걸기’인 셈이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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