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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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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길들이면 노예가 된다

늑대남 사용 설명서
등록 2012-11-30 16:55 수정 2020-05-03 04:27
말수부터 줄여볼까- 영화

늑대남은 단종 위기에 몰린 ‘남성성’의 자체 진화다. 같은 조상을 가졌기 때문에 전혀 다른 대륙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진화한다. 영화 의 철수(송중기)의 직계 조상은 손가락 대신 가위를 짤랑거리던 에드워드다. 에드워드의 환상적인 가위 솜씨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졌다. 연적을 제외하고서는 사람들과 화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데다 순정은 한층 진화했다. 그토록 오랜 기다림이라니. 서정주의 시 ‘신부’처럼 손가락만 대면 먼지처럼 부서지지 않을까. 여자들의 전매특허인 정절과 기다림도 가로채버렸다. 대신 언어능력은 한층 퇴화했다. 시종일관 입을 꾹 다문 연인, 어디서 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 에서 윤계상이 그랬다. 늑대는 갯과라더니. 어디 말수 적으면서도 밤에는 눈이 빛나는 남자 있으면 길들이기를 시도해볼 만하다. 참고 도서는 박보영이 즐겨 봤던 이다.

꽂히면 당신의 노예- 영화 시리즈

에서 늑대인간인 제이콥은 이렇게 말한다. “각인은 늑대인간에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이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 누군가에게 각인된다는 것은 그녀를 보는 순간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중력이 아니라 그녀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안 중요하다. 그녀를 위해선 뭐든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관계라면 뭐든 될 수도 있다. 친구, 오빠, 보호자….” 이쯤 되면 각인은 노예계약의 다른 말이 아닐까. 창백한 백인 흡혈귀에게만 끌리는 벨라가 아니라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친하다고 무조건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늑대인간인 그가 정작 내 친구나 동생한테 각인될 수 있다는 게 함정.

수컷 무리를 사랑하는 그 남자- 영화

“남의 학교에 왔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영역을 침범한 늑대 강태성(강동원)에게 반해원(조한선)과 그 무리는 가혹하게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해원이 그토록 포악해진 이유는 자신이 ‘찜’한 정한경(이청아)에게 태성이 다정하게 굴기 때문이다. 에는 송곳니가 길어지고 온몸에 털이 나는 변신 컴퓨터그래픽(CG)이나 야생성을 드러내는 분장이 등장하진 않지만 이 영화 속 남자는 철저히 늑대의 습성 그대로 그려진다. 평생 짝을 맺은 한 마리의 암컷만 바라보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10여 마리씩 무리지어 생활하며 우두머리의 역할이 중요한 늑대의 습성과 세계가 고스란히 담겼다. 한경처럼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태도로 두 늑대남을 자극하라. 현실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당신의 요령에 맡긴다.

낮에는 신사, 밤에는 괴물- 늑대남의 고전들

보름달이 뜬 밤을 조심하라. 당신의 남자친구가 늑대인간으로 변할지니. 영화에서 ‘늑대남’은 오랜 공포의 소재다. 1935년 개봉한 은 처음으로 늑대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그러나 늑대남이 대중적 공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41년 에서였다. 이때부터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 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포 대상으로 등극했다. 1979년 쓰인 은 1981년 , 1997년 으로 리메이크되며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대상으로 스크린을 점령했다.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늑대인간이 된다는 전염성, 늑대녀보다는 늑대남이 등장하고, 낮에는 연인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남성에서 밤이 되면 사나운 늑대로 변한다는 점은 이들 영화의 클리셰다. 사용법? 밤이면 포악함으로 점철되는 늑대남을 길들일 방법이 없으니 해가 뜨고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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