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다른 문화산업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고용 창출’이다. 특히 다른 문화 장르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관련 직종을 파생시킨다. 진정 ‘만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틈새 업무’라고나 할까. 만화가 영화처럼 여러 전문 작업이 모여 함께 만드는 작업인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의 원작은 미국 현대 만화계의 최고 스타작가로 꼽히는 프랭크 밀러의 같은 이름 만화였다. 이 만화의 국내 번역판의 책 뒷부분 판권과 작가 이름 등을 밝히는 부분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책들은 지은이, 옮긴이, 펴낸이(출판사 사장) 그리고 편집자의 이름 정도만 밝히는데, 이 책은 여기 표기된 명단이 상당히 길고 자세하다.
우선 지은이가 두 명이다. 글작가인 프랭크 밀러와 그림작가 린 발리가 함께 창작해서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말로 번역한 옮긴이가 나오고,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팀’이란 생소한 명칭이 이어진다. 미국 출판사 다크호스에서 이 책을 처음 기획·제작할 때 참여한 분야별 담당자들이다. 만화 기획 과정이 세분화돼 있어 우선 흔히 에디터라고 하는 편집자가 원고 편집자와 책 전체의 구성을 기획한 컨설팅 에디터 두 종류로 나뉘어 표기됐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 로고 디자이너와 북 디자이너가 따로따로다. 여기에 장정 뒤에 나오는 속지에 그리는 그림인 ‘엔드페이퍼 아트’를 담당한 작가 이름도 밝혔다.
<300>을 출간하며 출판사 세미콜론은 영어 알파벳 효과음 그림 글씨를 한글 그림 글씨로 바꿔내는 작업을 한 작가에게 일임했다. 세미콜론 제공
여기에 이 만화가 한국에서 나오게 되며 추가된 또 한 가지 생소한 이름이 들어갔다. 바로 ‘레터링’이다. 은 ‘레터링 김수박’이라고 따로 레터링을 서지사항에 표기한 무척이나 드문 번역 만화책이다.
레터링은 쉽게 말해 만화 속에 나오는 의성어나 의태어 같은 효과음 그림 글씨를 한글로 바꿔주는 일이다. 말풍선 속 대사 활자와 달리 이런 효과음들은 그림작가 고유의 개성과 작품 자체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한글로 바꾸면 그 맛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출판사는 영어 알파벳 효과음 그림 글씨에 최대한 가깝게 한글 그림 글씨로 바꿔 그리는 작업을 만화가 김수박씨에게 따로 맡겼다.
이 레터링 작업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티가 잘 나지 않으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수고로운 공정이다. 대부분의 외국 만화 한국판은 제작비 상승 부담 때문에 이 작업을 무성의하게 처리하는데, 이 워낙 예술성을 추구하는 만화다 보니 이 책을 국내에서 펴낸 세미콜론출판사는 레터링을 따로 맡겨 처리한 것이다. 책의 완성도 면에서 돋보이는 사례다.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외국 만화, 특히 소장용을 지향하는 작품 만화들 중에서 이처럼 레터링을 전문가에게 맡겨 판권에 표기까지 한 사례는 프랭크 밀러의 와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레터링은 생소하고 특별한, 만화 출판에서만 등장하는 새로운 틈새 직종이다. 의 한국판 뒤쪽 페이지의 서지사항 속에는 이런 만화 특유의 복잡하고 세분화된 협업 체제와 분업 구조가, 그리고 새롭게 탄생하는 직종의 등장 등이 숨어 있다. 이제 레터링을 대신할 쉬운 우리말 명칭이 등장할 차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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