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문화를 상징하는 집단 중 하나는 보헤미안이다. ‘현대편’에서 아르놀트 하우저는 19세기에 세 종류의 보헤미안들이 차례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1) 부유한 집 자제들이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 호기와 심술을 부린 것이 낭만주의 보헤미안들이었고, (2) 1848년 혁명의 실패와 더불어 “완전히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예술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연주의 보헤미안들이 등장했으며, (3) 그 이후에는 “서구문명 전체에 결별을 고한 절망자들의 집단”인 인상주의 보헤미안이 출현해 그 정점을 찍었다는 것. 이들을 각각 즐거운 보헤미안, 절박한 보헤미안, 분노하는 보헤미안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하우저가 보기에 보들레르는 2단계와 3단계의 경계이고, 랭보는 3단계의 완성이자 파멸이다.
랭보에게서 그 극단적 사례를 볼 수 있고 오늘날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는 저 보헤미아니즘 속에서, ‘쓸모없는’ 자신에 대한 자조(나는 저주받았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와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냉소(진정한 삶은 여기에 없다, 세계는 바뀌어야 한다)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보들레르가 어느 편지에서 “나는 자살을 하렵니다. 나는 남들에게는 쓸모가 없고 나 자신에게는 하나의 위험이니까요”라고 말할 때 그는 앞면이고, “당신은 행복한 분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처럼 쉽게 행복하다는 사실을 동정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뒷면이다. 이렇게 그들은 열패감과 자부심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시인의 ‘건강한 병듦’과 사회의 ‘병든 건강함’의 불화라고 할 수도 있을까.
그러니 올해 만 24살이 된 어느 청년의 첫 시집에 삶에 대한 낙관과 긍정이 가득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이체의 시집 (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은 어김없이 비관과 부정의 정서로 물들어 있다. 그는 “인간에게는 원래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를 지배할 줄 아는 짐승을 보지 못했다”(‘시인의 말’)라고 적었고, “인간은 원래 가볍다/ 무거운 인간은 나뿐이다”(12쪽)라고 적었으며, “어차피 늙어간다는 것은 아물어가는 일이다,/ 육체란 이미 상처 그 자체이므로”(101쪽)라고 적었고, “요컨대 이번 인생이란/ 비극이 일어나기를 호소하는 지루한 계약일 뿐”(141쪽)이라고도 적었다. 세상을 다 살았거나, 혹은 더 이상 살 생각이 없어 보이는 1인칭의 목소리가 거의 화사하게 들릴 정도로 능란하게 시집의 톤을 지배한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말로는 사랑도 할 수 있지”(136쪽)라는 차가운 구절을 보건대 그는 사랑에 대해서도 낙관이나 긍정과는 무관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의 어조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조금 더 절박해진다. 예컨대 이런 구절들은 나와 이 삶을 함께 견뎌낼 수도 있을 누군가에게 건네어진 말들이어서 이렇게 아름다워진 것이 아닌가. “젤소미나, 나의 젤소미나,/ 이곳은 무서운 곳이다/ 아무도 울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107쪽),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거짓이었다./ 당신, 정말 날 사랑하는 거야?/ 아니, 난 당신을 믿어.”(88쪽), “죽지 않기 위해/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야만 했어/ 풍선 속에서 풍선이 날아다녀/ 의연해져/ 불행은 잠시 동안만 긴 거야.”(59쪽)
이렇게 삶에 대한 단호한 절망 속에 사랑에 대한 희미한 희망이 섞여드는 대목들을 눈여겨 읽으면서 나는 애초의 인상을 한 번 더 뒤집어야 했다. 그래, 살아가는 일의 비감을 그토록 자주 토로한다는 것은 아직도 삶에 기대하는 것이 많다는 뜻이겠지. 어떤 이가 이제는 젊지 않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에게 슬퍼할 일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일 테니까. 19세기 보헤미안의 후예들은 20세기 초에 세 개의 길로 뻗어나갔다. 말라르메와 발레리의 미학적 초월의 길, 릴케와 엘리엇의 실존적 구원의 길, 브르통과 마야콥스키의 정치적 혁명의 길. 이 시인이 자신의 세대와 함께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에게 흔치 않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이체는 가끔, 다시는 똑같이 쓸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로, 아무렇게나 진실에 도달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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