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강은/ 내 책 속으로 들어가 저 혼자 흐를 것이다/ 언젠가는/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강은/ 네 추억 속에 들어가 호젓이 흐를 것이다/ 네 추억 속에서/ 하루하루 잊혀질 것이다// 이제 강은/ 누구의 사진 속에 풀린 허리띠로 내던져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것이 강인 줄 무엇인 줄 모를 것이다// 아 돌아가고 싶어라/ 지지리 못난 후진국 거기// 이제 강은/ 오늘 저녁까지 오늘 밤까지 기진맥진 흐를 것이다/ 자고 나서/ 돌아와 보면/ 강은 다른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이없어라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고은, ‘한탄’)
99% 진행됐어도 공사는 멈춰야 한다10년째, 한 달에 한 번 이상 서울~부산을 오르내린다. 두 도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기차에 몸을 싣는 시간은 절반이 줄었다. 두 도시 사이를 채우는 아름다운 풍경도 절반쯤 줄어들었다. 작은 논밭과 지붕 낮은 집들이 네모진 창 안에 그림처럼 들어오는 대신, 낙동강에 다다를수록 내내 황톳빛이다. 흉기처럼 무시무시한 기계와 땅속에 아프게 박힌 굵은 콘크리트 기둥들, 억겁의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였을 강바닥의 모래는 층위가 뒤섞인 채 강가에 무덤을 이루고 있다.
고은 시인이 말했듯, 이제 강은 나의 추억 속에서만 호젓이 흐를지 모른다. 논밭 사이를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모여 어느덧 풍만하게 굽이치는 강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던 기적 같은 풍경은 이제 “추억 속에서 하루하루 잊혀질 것이다”.
한국작가회의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가 ‘저항의 글’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시집 , 산문집 , 사진집 (이상 아카이브 펴냄). 책을 펴낸 작가 모임은 4대강 사업을 비롯해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산문집의 표제작 ‘강은 오늘 불면이다’를 쓴 강은교 시인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던 날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임진강을 건너 남녘에 정착했다. 고향을 잃은 어머니는 살아생전 내내 다시 건너지 못하는 (또한 수달, 말똥가리, 꾸구리가 살았던 아름다운) 강을 아쉬워했다. 강과 인연이 깊은 시인은 강이 보이는 땅에 직장을 얻었다. 교수로 초빙돼 부산에 살게 되면서 낙동강이 출렁이는 하단에 집을 얻었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강을 바라보며 시인은 시집 에 채워넣을 시들을 썼다. 이어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송도에 세간을 마련했다.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음으로 이사한 곳은 다대포였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몸을 섞는 곳이다. 다시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인은 물줄기와 붉은 햇덩이가 만드는 아름다운 광경을 위안 삼아 타향살이의 적적함을 달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가쁜 숨을 헐떡이며 불면에 시달리는 강을 보니 시인 자신도 단잠을 얻기 힘들어 산 아래로 집을 옮겼다고 한다.
길상호 시인은 낙동강 순례 기록을 산문집에 실었다. 경북 안동 마애습지에서 출발해 부산 아미전망대에 이르기까지 총 300km, 강을 따라 흘렀다. 첫날 마애선사유적지 일대는 버드나무 군락이 그늘을 만들고 습지와 모래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내일의 개발이란 없을 듯 온전하기만 한 평화와 여유가 그래서 더 아쉽고 서글프다. 하류로 가니 강의 상처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란다. 특히 셋쨋날 찾은 구미보 하류 지역은 ‘깔끔하게’ 습지의 풀과 나무를 거둬내고 있었다. 시인은 낙동강 순례를 하며 여러 차례 말을 잊을 것이다. 파헤쳐진 공사 현장의 잔인함에 한 번, 개발의 칼끝이 목전에 다다랐음에도 마지막까지 말간 얼굴로 있겠다는 강가 풍광의 태평한 의지에 또 한 번, 어떤 언어로도 강의 고통을 대신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시집 에서 시인 박준은 아픈 강을 문병했다. “당신의 눈빛은 나를 잘 헐게 만든다// (중략)// 강 건너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대오는 흔한 저녁,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어느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문병’) 헐은 마음으로 강가에 오래오래 물렀지만 강의 시름을 달래는 손길보다, 괴물 같은 포클레인이 강의 상처를 더 빠른 속도로 긁어댄다.
시인 정우영은 사라진 강에 대해 구슬프게 운다. “살과 뼈가 문드러진 버드나무와 갈대와 물풀들이 마지막 숨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눈동자가 썩은 사람들이 흐물흐물 걸어나와 강을 쓸어내린다.”(‘강이 사라졌다’) 그의 시와 황톳빛 핏물이 든 강가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눈과 머리와 마음이 동시에 아프다. 당사자 강보다 더하겠느냐마는, 당장에 되돌리거나 멈출 수 없음이 한숨을 절로 부른다.
“마냥 흐르게 둬라”그러나 시집을 채운 시인 99명은 입을 모아 말한다. 공사의 99%가 진행되어도 1%의 희망을 붙잡기 위해 공사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시집과 산문집에 이어 시차를 두고 발간된 사진집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강의 얼굴을 기록한 결과물이고, 아름다운 얼굴에 가한 폭력에 대한 고발이고 증언이다. 사진가들은 1년여에 걸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기록했다. 강 주변에서 여러 날을 먹고 자며 풍경을 담았다. 고단했지만 사라져가는 풍경, 훼손되어 시름하는 강보다는 덜 피곤하고 덜 괴로웠을 터다.
단도직입적인 불도저식 정부는 어쩌면, 아름다운 언어로 구슬프게 우는 이들의 은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전기철은 직설한다. “강물은 그냥 흐르게 둬라./ 산에 막히면/ 산을 껴안고 돌고/ 들을 만나면/ 팔 벌려 달려가니/ 마냥 흐르게 둬라.”(‘강’) 시인 이대흠은 강의 통곡을 2개 문장으로 전한다. “울며 바닥을 혀로 기어본 적 있느냐?// 강이 묻는다.”(‘탐진강’)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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