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얘기다. 지금까지 300만 마리가 넘게 파묻혔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첫째, 더 싼값에 더 많은 고기를 먹겠다는 인간의 욕망(주요 육류 소비량은 2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둘째 동물을 대규모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업’의 전면화(그 탓에 구제역은 빠른 속도로 퍼진다), 셋째 잡아먹기 좋은 동물만을 기르기 위한 선별 교배와 품종 개량(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어 바이러스에 약해졌다)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구제역 사태를 낳았다고 알고 있다(844호 초점 ‘육식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 참조).
예방 체제 확립이나 사후 관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육식’이라는 필요(욕망)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멜라니 조이는 에서 ‘육식주의’(Carnism)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 채식주의라는 말은 있는데 왜 육식주의라는 말은 없는가? 채식은 특별한 신념이고 육식은 당연한 것이라는 오도적인 전제 때문이라는 것. 육식주의에 대한 논의보다 더 근본적인 것도 있을까? 그것은 아마 인간이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윤리학적 논제일 것이다. 문학은 이 층위에 개입한다.
“이 몸은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났다.” 황정은의 단편소설 ‘묘씨생’(猫氏生)()의 첫 문장이다. 죽어도 자꾸만 다시 태어나는, 이름이 ‘몸’인 특별한 길고양이의 자전적 고백이 소설을 이끈다. 길고양이의 천적은 인간이라서 ‘몸’ 역시 세 번 이상을 인간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몸’의 묘생(猫生) 역정 고백은 고스란히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폭로가 된다. 소설 후반부에서 ‘몸’은 결국 인간의 잔혹한 손에 붙들려 또 한 번 죽음을 맞는다. 목숨이 곧 저주인 생이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마음이 아파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모든 좋은 소설이 그렇듯 이 소설의 호소력도 정의로운 메시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 이 작품의 포인트는, 흔히 비천하다 여겨지는 길고양이의 내레이션을, 고귀한 이의 일생을 기록하기에 적합한 고전한문학 문투에 얹었다는 점에 있다. 덕분에 독자는 길고양이에 대한 편리한 통념이 궁지에 몰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고양이 화자의 목소리가 기품 있고 의연할수록, 그를 파괴하는 인간의 비천함은 더욱 도드라지고, 이 소설을 인간으로서 읽는 독자의 수치심은 가중된다. 이렇게 어떤 미학은 윤리학이 된다.
한편 허수경의 새 시집 에는 어느 양(羊)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카라쿨양의 에세이’라는 장시(長詩)가 있다. “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 시집에서 가장 긴 이 시를 시인은 한달음에 썼다고 했다. 그럴 수 있게 한 에너지는 슬픔과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문장은 냉혹한 인간 경제학의 언어를 되비추듯 건조하다. “그 산 작은 풀밭에서 봄과 여름, 가을을 났던 채식하는 포유류는 이제 목으로 들어오는, 그리고 정확히 자궁 근처를 지나가는 날카로운 칼을 받는다.// 뱃속에 든 아가는 더운 숨을 품어내며 이 지상으로 나와서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젖꼭지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젖꼭지를 찾기도 전에, 그리고 단 한 번도 젖꼭지를 물어보기도 전에 한 생명이었다는 본능적인 원기억만을 지니고 죽는다.” 폭력이 반복되면서 죄의식이 망각되는 사태에 대한 시인의 아연함이 ‘칼을 받는다’라는 현재형 문장에 응축돼 있다.
우리에게 동물이란 무엇인가. 그간 한국 문학은 이 물음을 충분히 묻지 못했다. 앞의 두 작품은 예외적인 고투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의의가 저 물음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깊이 성찰하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성찰하게 된다. 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길 리 없는 것이다. 위기는 늘 생명 일반의 층위에서 발생할 것이다. 두 작품은 동물에 대한 절박한 동일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지한 근심이고, 결국 우리 시대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탄원이라고, 나는 읽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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