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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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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우승은 만만하지 않다

2011 아시안컵을 읽는 5개 국면…

조직력, 강한 신체 조건, 고른 경기력, 튼튼한 벤치, 공격형 미드필더 득세
등록 2011-01-28 15:02 수정 2020-05-03 04:26

아시안컵의 열기가 뜨겁다. 아시안컵이 상당한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간 우리가 아시안컵이 지니는 값어치에 다소 소홀한 면도 있었던 까닭이다. 근본적으로 아시안컵은 유럽선수권(유로),남미선수권(코파아메리카) 등과 마찬가지 의미를 갖는 대륙별 챔피언십이다. 설사 참가국들의 평균 수준이 유럽이나 남미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아시아 축구의 공식 챔피언을 가리는 이 대회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반세기 만의 우승 도전’이라는 화젯거리와는 별개로 아시안컵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흩어지면 짐 싼다

지난 1월18일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C조 최종전 인도와의 경기에서 구자철(맨 오른쪽)이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REUTERS/ AHMED JADALLAH

지난 1월18일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C조 최종전 인도와의 경기에서 구자철(맨 오른쪽)이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REUTERS/ AHMED JADALLAH

사실상 아시안컵은 만만한 대회가 아니다. 지구촌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의 축구 수준 격차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대부분의 상대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게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단기간의 토너먼트다. 여기서 1등을 거머쥐는 일은 어쩌면 4.5장이 걸린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내는 것보다 더 까다로 울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전의 대회들에서 어려움을 누차 경험했다.

유럽·남미와 같은 초대형 스타의 산실과는 거리가 멀다손 치더라도, 아시아 전체의 스타 파워 또한 완전히 경시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다. 이번 아시안컵에는 대한민국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 차두리, 기성용(이상 셀틱), 손흥민(함부르크)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굵직한 이름들이 거의 다 모였다. 에버턴의 주득점원 팀 케이힐을 위시해 마크 슈워처(풀럼), 해리 큐얼, 루커스 닐(이상 갈라타사라이), 브렛 에머턴(블랙번) 등으로 무장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의 스타 군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일본 또한 월드컵 스타 혼다(CSKA)와 분데스리가 신성 가가와(도르트문트)를 비롯해 하세베(볼프스부르크), 나가토모(체세나) 등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유럽파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땅에서 여러 해에 걸쳐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이란의 네쿠남과 쇼자에이(이상 오사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전성기를 지나오긴 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막심 샤츠키흐는 한때 디나모 키예프에서 저 유명한 안드리 첸코의 자리를 물려받았던 인물. 지금은 이른바 유럽파 대열에서 제외됐지만 우리의 이영표, 이란의 테이무리안, 이라크의 나샤트 아크람 등도 유럽 리그 경력을 보유한 선수들이다. 북한(정대세·홍영조)과 중국(하오준민)에도 유럽파가 존재하며, 개최국 카타르에는 우루과이·브라질·가나 태생의 귀화 선수들(세바스티안 소리아, 파비우 세사르, 로렌스 콰예)이 포진하고 있다. 선수들의 이런 면면은 대회 우승의 어려움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지표다.

그러면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이번 아시안컵의 특징적 국면들은 무엇일까? 아시아 현대 축구의 전반적 흐름과도 무관치 않은 다섯 가지 요소를 분석해봤다.

첫째, 조직력이 최우선이다. 축구에서 조직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조별리그를 마친 시점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주인공들은 모두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한 팀들. 대표적인 사례가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공격-미드필드-수비 라인의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수준 높은 패스워크에 의한 날카로운 공격을 터뜨리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됐던 A조를 무난히 탈출했다. B조 이변의 주역인 요르단 또한 절제된 조직력과 효율적인 경기 운영이 돋보였다. 대조적으로 특정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거나 조직적 측면에서 무질서함을 노출했던 팀들은 조별리그 단계에서 속절없이 짐을 쌌다.

둘째, 신체 능력이 말을 하는 대회다. 상당수 경기에서 신체 조건, 물리적 능력이 우세한 팀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오스트레일리아일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다른 팀들보다 앞서 있는 신체 능력과 파워를 잘 활용한 경기를 펼쳤다. 이란·우즈베키스탄·이라크도 유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셋째, 뚜렷하게 쉬운 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B조의 요르단과 시리아는 일본과 사우디가 우세하리라던 당초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D조도 외관상의 승점 차와는 달리 여섯 경기 가운데 다섯 경기가 모두 한 골 이내 승부였다. A조에서는 개최국이 개막전에서 혼쭐이 나면서 처음부터 긴장감을 자아냈다. 우리가 속했던 C조만이 비교적 뚜렷한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대표로 떠오른 구자철

넷째, 벤치가 강해야 이긴다. 토너먼트에서 선수층의 중요성은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 평범한 진리는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적용됐는데, 교체 선수, 대체 자원의 수준이 높은 팀이 조별리그 통과에 성공했다. 대회 최고의 멋진 골을 터뜨린 카타르의 유세프 아메드 알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심각하게 부진했던 주전 공격자원들의 역할을 120% 대체하며 카타르의 대회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다. 일본 팀에 활력을 불어넣던 교체멤버 오카자키 또한 사우디전 해트트릭의 주인공으로 거듭났으며, 쇼자에이와 교체 투입된 뒤 이라크 격파의 공로자가 됐던 이란의 칼라트바리, 부상을 입은 자콥 주라에프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대체한 우즈베키스탄의 스타니슬라프 안드레에프 등도 벤치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다섯째, 이른바 처진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유형의 선수들이 득세했다. 이번 아시안컵은 골잡이 역할에 한정된 스타일을 지닌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주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 능한 공격자원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대회다. 물론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맥을 같이한다. 골과 어시스트 모두에서 절묘한 플레이를 연발한 대한민국의 구자철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요르단의 하산 압델 파타, 일본의 혼다, 우즈베키스탄의 세르베르 제파로프, 카타르의 알리 등도 유사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케이힐, 우즈베키스탄의 알렉산더 게인리흐, 대한민국의 지동원도 단순한 골잡이 유형의 최전방 자원이 아니다.

한준희 한국방송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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