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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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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커피’는 누가 마시나요?

멕시코 커피 재배 농가를 통해 살펴본 공정무역의 실효·한계·비전,

다니엘 재피의 <커피의 정치학>
등록 2011-01-06 10:00 수정 2020-05-03 04:26

지금 사무실 내 책상 위에는 회사 안 카페에서 내려다 먹은 한 잔의 커피가 놓여 있다. 옆에는 도넛 가게에서 커피를 사 마시고 얻은 머그잔이, 가방에는 커피 가게에서 산 텀블러가 있다. 사무실 정수기 옆 사물함에는 달디단 커피믹스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사무실을 벗어나 퇴근하는 길, 고개를 휘휘 젓기만 해도 눈 안에 커피 전문점이 몇 개는 걸려 들어올 것이며, 집에 돌아가 찬장을 열면 커다란 원두 봉지 하나와 슈퍼마켓에서 티백으로 산 커피가 같은 칸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원두의 종류에 따라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커피 마니아는 아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변에 커피나무를 빽빽하게 심어놓은 양 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지. 점심을 먹고 테이크아웃해온 커피 혹은 자판기 커피의 종이컵이 책상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가난이 악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동티모르의 커피농장 노동자들이 커피를 말리고 있다. 커피 한 잔 가격 중 이들의 몫은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한겨레 자료

동티모르의 커피농장 노동자들이 커피를 말리고 있다. 커피 한 잔 가격 중 이들의 몫은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한겨레 자료

그러니까, 손만 뻗으면 커피가 손끝에 닿는 세상이다. 실로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거래가 활발한 품목이다. 그러나 석유 솟는 나라에 ‘석유 재벌’이 있다면 커피 콩 떨어지는 세상의 한켠엔 ‘커피 빈민’이 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고민에 빠진다. 3800원에 테이크아웃해온 아메리카노 한 잔 가운데 커피를 수확하는 농민들의 몫은 몇 방울어치나 되는 것일까? 방금 당신의 식도를 타고 넘어간 커피는 로스팅 업체의 야욕이 녹아든 한 모금일까, 농민들의 노동에 적절한 대가를 제공하고 만들어진 한 모금일까? 같은 선상의 고민에서 출발해 4년여의 연구를 진행한 이가 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 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니엘 재피(사회학)는 불공정한 커피 무역 체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커피 공정무역에 대한 빈틈없는 조사보고서로 (수북 펴냄)을 펴냈다.

알려져 있듯 대부분의 커피 재배 농가의 노동자들은 다국적기업과 종속적 관계에 놓여 값싼 임금을 받으며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이에 유럽에서 공정한 가격에 커피를 거래해 전세계 소농들에게 더 나은 대가를 제공하자는 공정무역 운동이 일어나, 1988년 네덜란드에서 첫 공정무역 커피 브랜드인 ‘막스 하벌라르’가 탄생했다. 커피는 최초의 공정무역 상품으로 지금까지도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상품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300개 이상의 커피 생산자 단체가 국제 공정무역 조직으로 등록됐으며, 이들은 50만 농민 가구를 대표한다.

공정무역 단체인 ‘이퀄익스체인지’와 ‘트랜스페어 유에스에이’의 활동가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들이 빈곤의 고리를 끊을 기회를 얻고 경제적 혜택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공정무역이 ‘평등한 국제시장’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20여 년의 짧은 기간에 팽창한 방식인 만큼 드러나지 않은 한계도 숨어 있다. 가장 성공적인 공정무역 상품인 커피는 아직까지 세계 커피 시장의 1%를 차지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실상 공정무역은 아직까지 그저 ‘주변적 대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니엘 재피는 멕시코의 소규모 토착 커피 생산자 단체인 ‘미치사’를 방문해 이들이 생산한 커피가 판매되는 두 개의 경로를 관찰한다. 중개인(코요테)에게 커피를 파는 전통적 국제시장과 공정무역 시장이라는 두 개의 거래 방식을 비교한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공정무역 농민들이 수익, 자녀 교육, 주거 환경에서 나은 형편에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수지타산으로 보면 ‘조금’ 나을 뿐이다. 공정무역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기농 재배로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 고용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을 통한 경제적 수익은 각 농가의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의 것으로 조각난다. ‘의외로’ 공정무역은 가난이 더 악화되지 않게만 해줄 뿐이었다. 미치사 회원인 로돌프의 목소리는 공정무역 커피 생산자의 현실을 대변한다. “생산비는 오르는데, 공정무역 가격은 10년째 그대로예요. 10년 전 인건비는 하루에 20페소였는데 지금은 50페소예요. 공정무역이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니까요.”

다니엘 재피의 <커피의 정치학>

다니엘 재피의 <커피의 정치학>

불공정에 경계음을 울리는 소비자로

더불어 국제 유기농 커피 인증기관들은 점점 더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해 농민들을 부담스럽게 한다. 그러나 미치사 조합원들은 공정무역 커피 재배를 그만두지 않는다. 이유는 전통적 생산자일 때 가져보지 못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치사 설립 초기부터 조합원으로 일했던 콘트레라스 디아스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 커피가 얼마에 팔려나가는지도 알고, 어디서 판매되는지도 알면서 전에 몰랐던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 그들이 얻는 이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정무역의 출발점은 소규모 농민들의 가난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에 다니엘 재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에 제공되는 최저 가격을 일정한 기간별로 비용 상승을 고려해 조정하는 구조를 만들고 생산자와 판매자의 이익 분배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매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수요가 있어야 더 많은 공정무역 커피가 생산되고, 많은 이익이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이에게 돌아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소비자 교육을 통해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계의 상업 구조와 남반구 생산자들의 노동 착취 실상을 알려야 한다.

다시 당신의 책상 앞으로. 다니엘의 맥락에 동조한다면 이제 더 이상 지금 눈앞에 놓인 커피 한 잔의 소비자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중요한 시민들이다.” 공정무역이 더 평등하고 포괄적이며 민주적인 형태로 진화할 수 있도록 공정무역과 자유무역에서 발견되는 불공정에 끊임없는 경계음을 울려야 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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