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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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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귀신이 돌아왔다

미신으로 폄훼됐던 무속신앙,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담론 체계인 귀신 연구로 살아나
등록 2010-08-18 17:26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2월9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남산 한옥마을에서 무당 이명옥씨가 집안의 복을 비는 상산맞이 굿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2009년 2월9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남산 한옥마을에서 무당 이명옥씨가 집안의 복을 비는 상산맞이 굿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종교인·종교학자·인류학자 등 8명이 최근 귀신 책을 썼다. (모시는사람들)는 귀신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한데 녹여 새로운 ‘귀신 담론’을 연구하려는 책이다. 이들은 기독교·불교·유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교가 악마, 마, 귀신 등의 초자연적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귀신은 죽은 다음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땅 주변을 배회하는 넋 또는 혼이다. 죽어 저승에 가려면 ‘충족한 삶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 비극적으로 죽거나 평생 천대받은 넋은 저승에 이르지 못하고 인간세계를 배회한다. 그러다 나쁜 운세에 따라 초자연적 위험에 노출된 어떤 개인에게 들러붙어 원한을 풀어 해코지를 한다. 무속에선 이를 ‘잡귀잡신’이라 부른다.

일제시대 관제 학자들이 편견 심어

무속은 하늘의 신령과 조상신을 숭배하면서, 이들 귀신을 배척한다. 기독교에선 타락한 천사인 악마가 인간을 해코지하고, 퇴마사 등이 기도의 힘을 빌려 이를 쫓아낸다. 이찬수 종교문화원 원장은 “이런 논리 구조 자체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와 무속이 다를 바 없다”고 분석한다. 그런데도 무속은 ‘귀신을 믿는 미신’이라고 곧잘 이해된다. 김동규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편견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한일병탄 이후 일제 총독부는 무라야마 지준, 아키바 다카시 등 관제 학자를 동원해 조선 무속의 조사·연구 작업을 진행했다. 무속을 인문·사회과학적으로 들여다본 최초의 시도였지만, 그 초점은 ‘내선일치’ 차원에서 일본 고신도와 조선 무속이 유사하다는 결론에 있었다. 일제 학자들은 무속이 숭배하는 신령과 배척하는 잡귀잡신을 구분하지 않았다. 뭉뚱그려 귀신 숭배 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개화기 조선의 일부 근대화론자들까지 무속을 원시 신앙으로만 치부했다. 이런 흐름은 지금까지도 무속에 대한 부정적 담론의 축을 이루면서 귀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군사정부 시절엔 무속을 전통문화로 인식했다. 무당이나 굿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속 본연의 종교성은 주목받지 못했다. 무당과 굿을 ‘연기예술’로만 이해한 것이다. 무녀 정순덕은 “카메라 앞에서 언제건 굿을 할 수 있는 무당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령을 모시는 무당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무속은 전통문화’라는 군사정부의 틀이 역설적이게도 무당들을 인기에 영합하는 연기자로 변질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인간다운 삶을 말하는 귀신 담론”

1980년대 진보 진영에선 굿을 민중문화로 재해석했다. 무당을 민중의 대변인으로, 굿을 저항문화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민중문화론’ 역시 무당과 굿의 문화적 요소에만 주목했다. 무속의 양대 축인 신령과 귀신에 대한 종교적·사회적 연구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한 것이다.

이찬수 원장은 “귀신 현상에 대한 진지하고 지성적이며 종합적인 논의가 한국에 없다”고 평가한다. 물질세계를 벗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담론 체계’가 귀신이다. 그러나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송과 인터넷의 괴담에 머물고 있다.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와 연결돼 있다”고 이 원장은 생각한다. 제도 종교가 이 문제를 소흘히 하고 있다면, 오히려 귀신 담론을 통해 그런 모색을 꾀할 수 있지 않을까. 귀신 담론을 공부하자고 주창하는 종교·인류학자들의 질문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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