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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여, 성생활을 배우자



성은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 있는 중요한 소통 방식… 호기심 갖고 공부하면 부부관계도 달라져
등록 2010-06-30 21:27 수정 2020-05-03 04:26
부부관계는 인간관계의 꽃이고, 성생활은 부부관계의 꽃이다. 서울의 한 구청이 진행한 ‘아버지 교육’에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남편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부부관계는 인간관계의 꽃이고, 성생활은 부부관계의 꽃이다. 서울의 한 구청이 진행한 ‘아버지 교육’에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남편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관계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파노라마, 그게 삶이라면 그 많은 관계 중에서도 부부관계야말로 인간관계 중의 꽃이 아닐까 싶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람 좋다” “인격자다” “자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인데, 집에서는 배우자에게 인정을 못 받고 “아이고, 밖에서 좋다는 소리 다 들으면 뭐해? 나한테는 형편없이 하는데…. 오히려 그런 소리 들으면 더 약 오른다니까!”라는 구박이나 듣는 경우가 꽤 많다. 어떤 여자분은 “순전히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라니까!”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밖에서는 단정하고 매너 있고 자상한 사람이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딴판으로 지저분하고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니 배우자는 황당해진다. 이런 양면성을 집 밖의 인간관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합리성과 의식적 판단의 잣대로만 해석하면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아무리 보아도 내 배우자가 나만 무시하는 것 같아 큰 모멸감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배우자를 비열하고 표리부동한 이중인격자로까지 평가하게 되면서 극심한 혐오심이 생겨 부부관계가 파탄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 만물에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법. 악령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그림자가 없어진 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의식과 합리성뿐 아니라 무의식과 비합리성 또한 같이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밖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야 자신의 사회적 자아(페르소나)의 가면을 쓰고 의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살겠지만, 집에 들어오면 그동안 긴장하며 쓰고 있던 사회적 역할의 가면을 벗고 널브러져서 쉬고 싶어한다. 가정에 돌아와서는 내 약점도, 내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도 다 드러내놓고 그저 수용과 격려를 받으며 에너지를 충전받고 싶은 것이다. 서로가 다 그런 욕구가 있으니 이것을 조화롭게 만들자면 부부관계가 쉽지 않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다른 인간관계는 한 문제만 풀면 되는 100점 만점의 과목이고, 부부관계는 두 문제를 풀어야 만족되는 200점 만점의 과목인 것이다. 그러니 같은 비중으로 평가하려면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진다. 부부관계는 의식과 무의식이 소통하고 합리와 불합리가 소통할 때에야 제대로 빛나는 어려운 과목이다. 어려운 만큼 큰 가치가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부관계에는 통상 네 가지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언어적 소통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왜곡 없이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둘째, 남녀 차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남녀는 큰 원리의 본성은 같지만, 또 한편 생리적·심리적으로 크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부부 각자의 성격의 바탕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렸을 때의 원가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는 서로에게 깊게 고착된 무의식의 소통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흔히 ‘부부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으면 사실은 여섯 명이 같이 누워 있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는데, 아내의 친정 부모도, 남편의 친가 부모도 부부 각자의 무의식 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부부간의 성생활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성이 의식과 무의식 소통의 중간 접점에 있는 심오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성기는 구조상 통상 드러나는 의식을 상징하는 상체(陽)와, 그림자처럼 감춰진 무의식을 상징하는 하체(陰)의 정중앙에 있다는 점을 통해 인간의 성을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 위치한 현상으로 통찰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아우르며 언어적·비언어적 소통 모두를 함께 가지고 있는 성생활이 ‘천박하다’ ‘밝힌다’ 따위의 왜곡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에서 그토록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좋은 부부관계야 뭐, 그 인간만 좀 변하면 잘될 건데…”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뭐 이리 복잡한가?” 싶을지 모르겠다. 인간은 자기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거울이 필요하다. 보통 부부는 가장 가까운 거울에 비유되는데, 부부관계에 대해 선입관 없이 신성한 호기심을 갖고 깊이 공부해나가다 보면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었던 것이 배움과 성장의 거울로서 서로 보면서 “배우자!” 할 수 있는 ‘배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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