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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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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려 할수록 잘 안 된다


‘반드시’라는 당위를 내려놓고 이완된 상태로 섹스를 즐겨라
등록 2010-04-30 20:43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남편: “자기야. 한 번 할까?”

아내: “어, 좋긴 한데… 나 5분 뒤에는 봐야 하는데.”

남편: “그럼, 그때까지만 하면 되지 뭐.”

아내: “그래, 그럼 잠깐만이야~.”

이렇게 대화가 오간 뒤 섹스를 했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어느 때보다 사정 조절이 잘돼 평상시 아무리 길어도 10분 이상 안 가던 남편이 30분까지 멋진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도 결혼 12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멋지고 오랜 오르가슴으로 을 보지 못한 게 전혀 아깝지 않았고, 남편의 정력이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구나 싶어 앞으로의 부부생활에 기대가 커졌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는 아예 하루 날을 잡고는 “자기야~ 오늘 아이들 다 친정에 보냈고, 오늘 하루 종~일 우리 둘만 있어. 나 씻고 올까?”라고 요염한 눈빛을 보내며 유혹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 속인가? 아내의 기대처럼 하루 종일 황홀한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아무리 노력해봐도 남편이 발기조차 안 돼 허탈하게 “그냥 자자” 하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남편도 아내도 롤러코스트처럼 오르락내리락한 이 두 번의 섹스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남자의 ‘수행불안’이라는 심리적 부담이다. 5분 뒤에는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의 입장에선 5분 정도야 내가 아무 어려움 없이 잘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잘 못하면 드라마 보게 해주려고 빨리 끝낸 것처럼 둘러대면 되니 이래저래 부담을 전혀 안 느껴도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부담이 덜하니 처음부터 이완하며 시작했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발기도 사정 조절도 잘됐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부는 그날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다.

두 번째 경우에는 아이들을 다 친정에 보내고 하루 종일 시간이 있다고 하니까 이 하루 종일을 내가 어떡해서든지 감당하고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남편에게 긴장·의무감·의지력 등으로 작용하고, 이 때문에 교감신경이 항진되면서 아예 발기조차 안 됐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자율신경 중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원리를 좀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이완하고 안정하고 명상할 때 주로 활성화되는 부교감신경은 남성의 성 반응에서는 발기를 자연스럽게 해주고 의식을 편안하게 내려줘 사정 조절을 잘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이와 반대로 긴장·집중·의지력 등을 발휘할 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은 남성의 성 반응에서 오로지 사정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부터 바짝 흥분하고 부담으로 긴장된 상태면, 발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감신경이 이미 높이 올라와 있으므로 약간의 자극에도 그만 사정해버리기 쉽다. 그런데 처음 시작이 느긋하게 이완된 상태면, 교감신경이 밑에 내려와 있으므로 웬만한 자극으로 교감신경을 높이더라도 사정하는 상태까지 가기에는 여유가 있어서 사정 조절이 편해진다.

그러고 보면 성생활이 불성실해 보이는 일부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불만과는 달리 잘해보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임상에서 이런 시각 전환을 통해 오해로 얽힌 부부 성생활의 실타래를 풀기도 한다.

나그네의 옷을 강력한 힘의 바람이 벗기기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저절로 벗게 만들듯이 오히려 잘해보려는 의지력을 발휘할수록 더 안 되는 이 아이러니가 비단 성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또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당위를 내려놓고 이완하며 내맡길 때 오히려 우리의 무궁한 잠재력의 에너지가 샘솟듯이 흐른다는 것을 동서고금의 종교나 명상의 가르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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