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내가 죽자 얼마 안 되는 그녀의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딸은 그 돈을 모두 1천원짜리로 바꿨다. 필요할 때를 대비해 두 장씩 접어 지갑에 넣어 다녔다. 그러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돈을 꺼내주거나 슬쩍 놓아두고 가기를 계속했다. 못 듣는 사람, 못 보는 사람, 팔 없는 사람, 다리 없는 사람… 그런 분들을 위해 1천원짜리를 접고 또 접었다 한다.
〈생의 빛살〉
이 좋은 이야기를 나는 조은 시인에게 들었다. 그녀의 네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2010)에 실린 시 ‘모순 3’의 내용이다. 책이 나온 지 석 달쯤 됐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게 미안할 정도로 좋은 시집이다.
“아주 어렸을 때도 나는/ 소리 내 울지 않았다고 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어미의 입장에서는 그 아이가 기특하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더럭 겁이 나기도 했겠다. “그러다 문득 이상해 달려가보면/ 아이는 베갯잇을 흥건히 적시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단다.” 이어지는 마지막 세 줄이 인상적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절망했다!/ 발버둥치고 패악을 부렸지만 바꾸지 못한/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다.”(‘흙의 절망’에서) 삶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생에서 이미 알았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절망했다니! 갓난쟁이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모습이 쉽게 잊힐 것 같지 않다. 삶의 비극성을 절묘하게 응축해놓은 이 한 컷만으로도 충분히 시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시 한 편을 옮긴다.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언젠가는’ 전문)
인생을 허송세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따위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 시인은 지금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시인은 문득 언젠가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를 묻는다. 아마도 왜 버스 따위나 기다리며 살았던가 하는 생각 때문에 목이 메겠지. 정말 기다린 것들은 아예 오지 않거나 너무 늦게 오는 게 삶이었구나 싶어 슬퍼지겠지. 언젠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시인은 지금 벌써 목이 멘다. 이 시의 시간 구조가 아프다. 나는 언젠가 지금의 나를 슬퍼할 것이고 그렇게 슬퍼할 나를 생각하니 지금 나는 슬프다. 그런데도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쉽게 바꿀 수 없는 게 또 삶이라는 말도 이 시에는 숨어 있다.
그러면 두 편의 시를 잇대어 볼까. 이 시들에 따르면 삶이라는 건 이런 식이다. 우선은 전생을 뜻대로 살지 못한 아픈 기억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절망하고 소리 없이 운다. 그리고 현생을 살아가면서는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며 울겠구나 하면서도 도리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만다. 그러니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시인은 언젠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를 받은 적이 있는 모양이다.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말해줘. 너의 그 말이 꼭 필요해.” 문자를 삭제하려다가,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서 있을 한 절박한 젊은이가 보였다 한다. 시인은 답신을 보낸다. “시험 꼭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동질’(同質)이라는 시의 내용이다. 이를테면 이런 순간들로 생을 채워나가야 할 텐데 말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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