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존슨의 〈플레이크〉. REUTERS/ PATRICK RIVIERE
한 노래를 알게 되는 경로는 인생 경로만큼이나 다양하다. 라디오를 듣다가, 길을 걷다가, 영화를 보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등등등. 그중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라는 항목도 포함될 수 있을 텐데, 여기에서 ‘술집’이라 함은 최신 가요를 1위부터 50위까지 밤새 무한 반복하거나, 크림색 벽지처럼 최대한 튀지 않는 음악을 기치로 내건 가게들 얘기만은 아닐 터. 장르·국적·취향·볼륨을 막론하고 나름 음악을 메인 안주로 차려내는 가게에서는 주인장의 개성 내지는 인격 비슷한 것까지 느낄 수 있는바, 그 설득력은 종종 가게의 흥망성쇠를 판가름 내기도 하니 그런 걸 구경하는 것도 이런 곳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아무튼.
필자가 잭 존슨의 (Flake)를 들었던 것은, 그의 일진광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기 약 1년 전쯤, 평소 음악 컬렉션의 방대함과 질에 상당한 신뢰를 품고 있던 한 가게에서였다. 깔끔하면서도 나이브하지 않은 기타며, 발목까지만 살짝 유행에 담근 목소리며, 후반부에 나오는 벤 하퍼의 슬라이드 기타며, 는 그야말로 내 귀에 ‘순간 접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곡목과 뮤지션 이름을 적어둔 메모지를 분실한 것이었다. 뭐, 술집에서 메모지를 잃어버린 것 정도야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필자는 유독 그때만큼은 자신의 기억력을 맹신하고 있었더랬다. 며칠 뒤 필자는 레코드숍(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게 있었다)에 들러 ‘J 파트’로 직행, 잭 존슨이 아닌, 조 잭슨의 앨범을 열심히 뒤졌다.
넉 장 정도의 조 잭슨 CD를 손에 든 필자는 순간 의혹에 휩싸였다. 그 나긋나긋하고 담백한 목소리가, 이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풍의 넓은 이마에 기름기 넘실거리는 중년 남성에게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도 잠시, 안타깝게도 곡 제목까지는 기억하지 못한(이라고 굳게 믿었던) 필자는, 중국집으로 치면 간자장, 치킨집으로 치면 양념·프라이 반반에 해당하는 (The Collection)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골라 들었고, 결과는 불길한 예감 이상으로 참담했다.
당시는 필자가 목표한 앨범 (Brushfire Fairytales)이 국내에 수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레코드숍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는 건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필자가 가진 CD 중에는 그런 식의 눈물겨운 실패의 산물이 꽤 된다. 물론 필자는 그런 걸 마냥 웃고 즐길 만큼의 경제력이나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해본다. 그 실패들 덕분에, 이젠 그나마 스스로 기대도 될 만한 취향이라는 걸 얻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생한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은 입문서나 전문가 추천 같은 ‘교과서’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튼튼한 확신을 준다. 운이 좋다면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까지 덤으로 알게 되고 말이다.
물론 조 잭슨의 음악은 끝까지 좋아지지 않았지만.
한동원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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