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안가요’라는 단어가 사라진 뒤 어언 사반세기. 그동안 ‘표절’은 ‘번안가요’의 대체어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뭔 얘기냐면, 거의 번안가요급으로 표절을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표절은 표절로도 쳐주지 않는 현상이 이십하고도 일세기로 넘어온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각종 매체에서는 ‘음악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등등을 해부하곤 하는데, 20년도 넘은 얘기를 아직까지 반복 재생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때마다 항시 최종 해법으로 ‘무엇보다도 창작자 자신의 양심’ 등을 거론하는 건, 정말이지 됐다고 본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 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스타일에 대한 예의’. 이건 또 뭔 소리냐, 요즘같이 스타일이 대접받는 시대가 또 있냐고 반문하실 독자는 안 계시리라 믿는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여기에서의 ‘스타일’이란 드라마에, 신용카드에, 심지어는 껌에까지 붙어 있는 그런 카인드오브 스타일이 아니라, ‘그 아티스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말한다.
유튜브만 슬쩍 검색해봐도 아시겠지만, 네댓 옥타브는 우습게 넘나드는 여성 보컬부터 컴퓨터보다 정확하고 빠른 속주를 하는 기타리스트까지, 이 세상에 잘하는 뮤지션들은 정말이지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이들은 왜 ‘아티스트’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인가. 그건 그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악기를 20년 넘게 만지작거려온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테크닉이라도 연습만 열심히 한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이란 그리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뿌리를 찾고, 그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그 뿌리에서 거꾸로 거슬러나와 자신만의 길을 내는, 길고도 고된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예를 들어, 특유의 술꼬장 창법으로 37년 동안 (Knockin’ on heaven’s door)를 옹알거리는 밥 딜런에게 우리가 여전히 환호할 수 있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그걸 가능케 하는 핵심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어디선가 뜨고 있는 아이템을 약삭빠르게 훔쳐(=빌려와, 차용해, 참조해 등등) 색칠만 살짝 바꿔 내놓는 사람들이 아티스트 행세를 하는, 그리고 불리할 땐 ‘엔터테이너’라는 야릇한 단어 뒤에 숨는 농간을 부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난국을 타개할 주체는, 그렇다, 결국 깨어 있는 청중이다. 넓게 듣고, 다양하게 즐겨, 진짜와 따라쟁이들을 분리수거해낼 수 있는 귀를 가진 청중이야말로 ‘일단 뜨면 만사 오케이’ 주의자들을 근절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디 음악에만 해당되는 얘기이겠나.
한동원 기타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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