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술자리에서 톰 웨이츠(Tom Waits) 얘기를 했다가 이런 핀잔을 들었다. “도대체 톰 웨이츠가 언제 때 톰 웨이츠예요?” 내심 꽤 놀랐다. 그런가? 톰 웨이츠가 그런 존재였나? 내 말은, 이 양반이 한창 왕성하게 음반을 내던 시절이 꽤 오래전 일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가 ‘언제 때 톰 웨이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뮤지션, 심지어 유행씩이나 한 아이템이었던 적이 있었더랬나 하는 얘기다. 있었다고? 죄송하다.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 전직 부랑자였다는 설이 너무나도 설득력을 얻는 그의 비주얼로 보나, 담배 한 보루 연타로 피운 직후 월드컵 거리응원 한판 하고 온 듯한 그의 목소리로 보나, 톰 웨이츠는 유행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유행의 땅끝 마을을 벗어나본 적 없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야, 원.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얘기를 꾸역꾸역 계속 하자면, 필자에게 톰 웨이츠는 이런 존재다.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톰 웨이츠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일단 그 가게를 신용하게 된다. 술집이라는 곳에서 ‘신용’이라는 단어가 얼마만큼의 효용가치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담황색 에탄올 용액을 맥주라 주장하며 들이밀지는 않을 것 같다. 대개 그런 가게는 작고, 외진 곳에 있다. 사람들은 종일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후덥지근한 공기를 환기시키고, 바에선 야구 모자를 쓴 말수 적은 주인이 냉장고 위에 얹어놓은 브라운관 TV로 야구 중계를 보고 있다. 물론 소리는 죽여져 있고, 머리 위에는 프로펠러 비행기의 모형이 매달려 있다.
그런 곳에서 톰 웨이츠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한참 얘기에 열중하던 친구는 갑자기 말을 멈춘다. 조용히 술만 홀짝거리던 녀석은 노래가 끝난 다음에야 다시 얘기를 시작한다. 사과하듯 웃음을 지으면서.
물론 사과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내게 톰 웨이츠의 노래는 그런 노래다.
핀잔을 들은 다음날, 오랜만에 (New Coat of Paint) 앨범을 꺼내 들었다. 이 앨범은 톰 웨이츠의 노래들을 하드록부터 포크, 블루스에 이르는 각종 아티스트들이 다시 부른 것을 담았다. 의도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이 앨범의 곡 순서가 나름 재밌다. 뭔 말이냐면, 첫 곡 (Whistlin’ Past the Graveyard)를 자정으로 해서, 다음 곡은 밤 9시, 다음 곡은 해질 무렵, 다음 곡은 오후, 다음은 한낮,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블루스 명인인 플로이드 딕슨이 부른 마지막 곡 (Blue Skies)에 이르러서 앨범 속 시간은 대략 아침 7시쯤에 당도한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워낙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톰 웨이츠의 노래들이지만, 남산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들은 플로이드 딕슨의 목소리는 그의 노래가 단순히 그런 노래, 그런 유행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곡을 들으면서 잠깐 올려다본 하늘은 말 그대로 파란 하늘이었다.
한동원 기타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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