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 가장 멋진 대목으로 두 남녀 주연배우가 악기점에서 함께 노래를 하는 장면을 꼽는 분이 많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둘이 부른 (Falling Slowly)도 좋았고, 즉석 화음을 만들어가는 둘의 의기투합도 근사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실 그 악기점과 그곳의 주인장이다. 악기점을 합주실 삼아 (순전히 볼륨적인 관점에서) 고래고래 노래하는 ‘음악남녀’에게 슬쩍 던지던 그 미소는, 아아, 정말이지 훈훈했지요.
그런데 이런 풋풋한 광경이 우리나라에서도 연출될 수 있을까. 슬프게도 그 확률은 비관적이다. 우리나라 최대 악기상가인 낙원상가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일단 악기를 구경하러 가게 앞에 멈춰서기라도 하면 그 즉시 점원의 일대일 밀착 마크에 봉착해야 한다.
기타의 경우로 얘기해보자면, 점원은 튜닝을 빙자해 손님이 골라잡은 기타를 넘겨주지도 않은 채 보란 듯이 속주 플레이즈 한 소절을 날려준다. 이는 물론 손님의 기선을 제압해 판매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조치로서, 대개는 기타 소리를 최대한 뻑적지근하게 윤색하는 동시에 기타 본연의 소리를 최대한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연결된 페달(기타의 원음에 여러 가지 색채를 덧입히는 장치)을 전부 가동하는 조치가 수반된다.
그 ‘시범경기’ 뒤에야 손님은 점원이 선심 쓰듯 넘겨주는 기타를 만져볼 수 있는데, 그 뒤에도 흡사 심사위원스러운 자세를 취한 점원의 부담 만점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도 긴장이 안 될 수 없다.
나름 낙원상가 출입 경력 사반세기에 빛나는 필자도, 최근 상당히 초현실적 경험을 했더랬다. 물론 그 기타가 꽤 고가인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주인장은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그 가격을 반복해 주지시키며 강렬한 ‘그래도 쳐볼 테냐’ 염력파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즉시 가게에서 나와야만 했다. 하지만 특유의 느린 반응 속도 덕분에 타이밍을 놓친 필자는, 잠시 뒤 그 기타의 앞판에 너와집 지붕처럼 A4용지가 한장 한장 덧대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김봉남 선생’의 손길이 가닿은 듯 순백의 철갑을 두르고 있던 그 기타… 그것을 건드릴 엄두를, 필자는 차마 낼 수 없었다. 물론 판매자 입장에서는 상품을 만지작거리는 손님이 귀찮을 수도 있다.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신경이 곤두설 수도 있다. 하지만 악기점을 찾아오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싶어하는 음악팬이 있기에 악기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악기점은 여행으로 치면 터미널이나 공항 같은 곳이다. 어쩌면 평생이 될 수도 있는 그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을, 우리나라 악기점들이여, A4용지 반장 정도라도 품어줄 순 없을까. 즉석 합주 공간 제공 같은 호사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지.
한동원 기타 플레이어
<font color="#006699">*‘한동원의 씽 쌩 썽’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fon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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