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이하 SRV)이라는 기타리스트가 있다. 이 사람은, 아는 사람은 완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완전 모르는, 아무튼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놓은 불세출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다.
이미 무명 시절부터 탄탄하게 완성된 자신의 스타일과 연주력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고수는 어디에 던져놔도 티가 난다고, 데뷔 앨범을 내기도 전에 그 유명하다는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밴드(라봐야 베이스와 드럼, 덜렁 두 명)인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과 함께 세계 각국의 재즈 뮤지션과 유명 스타들이 우글우글 모여든 이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이 가루가 돼라, 기타가 불살라 올라라,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에서 온,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무명 기타리스트에게 관객이 날린 것은 환호가 아닌, 영문과 이유와 까닭을 알 수 없는 야유였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혁신이 겪는 숙명이었으리라. 아무튼, 기타를 양어깨에 얹어놓거나 등 뒤로 돌려서 치는 SRV 특유의 필살기마저도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야유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마지막 곡이 끝날 때쯤 공연장은 보름달 밤의 늑대 울음소리를 방불케 하는 야유로 가득 찼고, 당연히도 SRV는 엄청난 상심을 안고 무대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날 SRV의 연주는 훌륭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야유가 입혔을 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블루스가 특히나 ‘필링’(feeling)을 생명으로 하는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SRV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알려지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다.
객석에서 SRV의 연주를 지켜본 데이비드 보위와 잭슨 브라운 같은 거물급 뮤지션들이 그 공연이 있던 날 밤 함께 연주하기를 청했고, 결국 SRV는 데이비드 보위의 부탁으로 (Let’s Dance) 앨범에서 기타 솔로를 녹음하게 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는 그야말로 메가히트를 기록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앨버트 킹의 손맛을 그대로 계승한 이 무명 기타리스트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에 SRV와 더블 트러블의 데뷔 앨범이 발표되면서 이후의 모든 것은 역사가 되었다.
그 참담한 야유가 쏟아졌던 공연으로부터 3년 뒤인 1985년.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어 다시 몽트뢰 페스티벌에 서게 된 SRV에게, 관객은 이미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환호를 날릴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그 1982년의 공연과 85년의 공연을 묶은 CD가 발매된 것은 SRV가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지난 1999년의 일이다. 이 CD의 뒷면에는 82년의 첫 번째 공연에 대한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Tommy Shannon)의 한마디가 적혀 있는데, 이것을 독자 여러분께 꼭 전해드리고 싶다.
“때로 실패처럼 보이는 일들은, 정체를 감추고 있는 성공일 경우가 많다.”
한동원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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