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이란 무엇인가? 역사적 고찰이건 이념에 대한 분석이건 한국의 ‘우익’을 전면적으로 다룬 책은 드물다. 우익이라면 민족주의나 보수주의보다는 곧장 반공주의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이러한 특수성이 우익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물음까지도 봉쇄해버린 것은 아닐까? 일본의 평론가 마쓰모토 겐이치의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접하면서 갖는 궁금증이다.
천황제를 국가 지배 원리로 만든 건 ‘리버럴’
1976년에 첫 출간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므로 일본에서도 우익사상에 관한 대표적인 저작에 속하는 이 책의 원제는 ‘사상으로서의 우익’이다. 초점이 우익의 활동과 역사보다는 사상적 본질의 해명에 두어졌다는 걸 시사한다. 물론 그러한 해명을 위해서는 우익의 성립과 전개 과정에 대한 고찰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마쓰모토가 독특하게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근대 일본에서 권력을 장악한 지배계급은 좌익도 우익도 아닌 리버럴(liberal)이었다. 원래 자유주의자를 뜻하는 리버럴이 일본에서는 보수주의자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이 리버럴 세력이 좌우 양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지배계급으로 군림했다고 본다. 즉, 프랑스혁명 이후에 나타난 유럽의 좌파·우파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것은 선진자본주의 열강 밑에서 일본이 뒤늦게 근대화를 추진해야 했던 특수한 사정에서 비롯됐다.
입헌정치를 시도한 이토 히로부미 내각이 출현하면서 리버럴은 근대 일본의 지배계급이 되며, 이들은 메이지 국가체제의 근대화 노선을 적극적으로 주도해간다. 그리고 이때 이러한 노선에 반대하는 ‘반체제’로서 좌익과 우익은 마치 쌍생아처럼 태어났다. 좌익은 ‘계급’의 입장에서, 그리고 우익은 ‘민족’의 입장에서 근대화 노선에 반대했다. 사정은 전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일본의 지배권력은 진주군(미군) 및 진주군과 결탁한 리버럴이었으며 이들이 처음에는 민주화를, 그리고 이후에는 우경화를 추진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우익사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좌익은 ‘마르크스교’이고 우익은 ‘천황교’라고 단순하게 정의하는 안이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자는 우익의 사상을 ‘가장 높이 도달한 지점’에서 해명하려 한다. 그가 제일 먼저 제시하는 것은 우익의 사생관이다. 사상이란 궁극적으로 논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 곧 주체의 에토스의 문제라는 생각에서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익의 사생관은 일본의 전통적인 산화(散華)의 미학, 곧 ‘아름다운 죽음’의 미학 위에 형성된다. 삶의 극치에서 죽어야 하며 그렇게 죽는 것이 아름답다는 식이다. 또 일본의 우익은 리얼리스트를 자임해온 좌익과는 달리 언제나 낭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낭만(뜻)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들은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농본주의자들이었다. 벼농사를 기반으로 형성된 일본의 사직을 관장하는 사제(司祭)가 천황이기에 천황론도 자연스레 우익의 기본 사상이 된다. 다만 천황을 장악하여 국가지배의 원리로 만든 것은 우익이 아니라 언제나 리버럴이었다.
우익의 타락한 형태 ‘대동아공영권’일본 우익은 또한 내셔널리즘(민족주의)과 아시아주의를 동시에 주창했는데, 아시아주의란 서구 열강에 대항하여 아시아 민족의 내셔널리즘과 연대하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자신이 제국주의화되면서 우익의 내셔널리즘과 아시아주의는 충돌하게 된다. 일본의 제국주의 또한 아시아 내셔널리즘의 타도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우익은 아시아주의를 포기한다. 그런 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체제에 편입하면서 타락한 형태로 아시아주의를 표방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흥미롭다.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저자는 내셔널리즘을 대의명분으로 한 일본 우익과 한국의 우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하는데, 실상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은 게 아닌가도 싶다. 민족주의보다는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을 견지하는 한국 우익의 견고한 반공주의와 현실주의가 떠올라서다. ‘사상으로서의 한국 우익’이란 무엇일까?
로쟈 인터넷 서평꾼·blog.aladdin.co.kr/mr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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