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A341B1">만화 이미지대로 현실의 자신을 연출하는 여학생, 소년시절의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 어른의 SF </font>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독어독문과
15년여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성인들이 공공장소에서 만화책을 꺼내 읽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뭘 보나 슬쩍 훔쳐보니 그중에는 바라보기 민망한 내용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 모습이 솔직히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그 뒤 몇몇 일본 만화를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만화가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은 예술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웬만한 일본 만화들은 잘 쓰인 교양서적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의 경우 그 철학적 성취가 차라리 영화 보다 낫다고 하지 않는가.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일본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양말이 중력을 거부하고 종아리에 붙어 있는 것도 물리학적 경이였지만, 소녀들이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자세도 해부학적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저렇게 힘든 자세로 서 있는 걸까? 나중에 그 양말과 자세가 만화 속 ‘큐트’한 소녀의 이미지에서 나왔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됐다. 이렇게 현실이 만화의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연출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모든 것은 만화라는 장르가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남다른 위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만화의 전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일본의 목판화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우키요에’와 같은 일본의 목판화가 서양에 알려져 ‘자포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인상파를 비롯한 서양 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목판화는 그 자체가 만화처럼 그래픽인데다, 이미 당시에 대량으로 복제돼 상업적으로 판매됐다. 그런 의미에서 목판화는 근대 이전의 기술복제 문화로, 오늘날의 상업적 대중문화를 예견했다고 할 수 있다.
속의 사건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69년, 우연히 들판에서 아지트를 발견한 아이들은 그곳을 ‘비밀기지’라 이름 붙이고, 그곳에서 각자 집에서 들고 온 만화, 라디오, 누드 잡지 따위를 공유하며 심심한 소년 시절의 일상을 보낸다. 유키지가 모임에 합류한 뒤 아이들은 상상을 통해 악당들이 지구를 파괴하려 할 때 자신들이 들고 일어나 지구를 지킨다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글로 적어 거기에 ‘예언서’라는 이름을 붙인다.
만화의 플롯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다. 미니마트의 주인이 된 켄지는 우연히 어린 시절 비밀기지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상징을 보게 된다. 그 뒤 사회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친구’라 칭하는 사람이 이끄는 거대한 컬트 집단에서 일으킨 것으로, 그들은 2000년 새해를 맞이하기 전날 세계 전체를 파괴할 계획을 갖고 있다. 켄지는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 옛날 ‘예언서’의 시나리오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옛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싸우기로 한다.
<font color="#008ABD">‘옴진리교’의 독특한 신학적 상상력</font>과연 ‘친구’는 누구일까? 예언서나 옛날 비밀기지의 상징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아마도 어린 시절의 그 악동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번번이 독자의 추측을 빗나가게 하면서 ‘친구’의 정체를 감춰버리고, 이것이 만화 전체에 강한 흡인력과 극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서사는 여러 개의 시간대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나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다른 하나는 2014년부터 ‘친구시대’의 제3년까지. 거기에 단서를 찾아 과거로 플래시백되는 또 하나의 시간대가 있다. 이렇게 세 개의 시간대를 섞어놓고 서사를 진행시키는 데에는 정교한 계산과 뛰어난 기교가 필요할 게다.
보드리야르였던가? 미국 사회야말로 거대한 디즈니랜드라고 했던 것이. 그와 비슷하게 나는 일본 사회를 보면서 거대한 만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키하바라’는 온갖 기술들이 모이는 물질적 경제의 장소인 동시에 온갖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주소년 아톰은 만화이지만, 일본의 발달한 로봇기술은 그 만화적 상상을 물질적 현실로 제시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 일본에서는 어렵지 않게 현실의 자격을 획득한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지하철의 여기저기에 ‘옴진리교’ 관계자들의 전단이 붙어 있었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야 전세계에 공통된 현상이지만, 세계를 몰락시키기 위해 대중을 향해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독특하다. 종말론 교도들은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종말아 오너라. 네가 안 오면 내가 네게 가겠노라”라며 집단 자살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세계를 몰락시키겠다고 사린가스를 뿌려대는 사고방식은 신학적 상상에 만화적 상상이 겹쳐야 가능한 게 아닐까?
그 때문이었을까? 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게 공상과학(SF)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 사회의 리얼한 묘사에 가깝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수백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의 문화는 특정 종교의 독단에서 자유로운 법. 다른 나라에서는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집단들도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삶의 일상으로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적 생활의 바깥에 존재해 그저 영화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폭력조직도 일본에서는 그저 좀 껄끄러운 ‘친구’로서 일상생활 속으로 용인된다.
<font color="#008ABD">도시락 글라이더에서 초경량 비행기로</font>어린 시절 내게도 아지트가 있었다. 그저 지구를 지키겠다는 의지만 없었을 뿐, 거기에도 소년 잡지가 있었고, 배터리가 필요 없는 광석 라디오가 있었고, 밖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는 잠망경이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 설치해놓은 그 흉물을, 어머니는 당장 치우라고 하셨지만, 그때 아버지가 나서서 어머니를 꾸짖으며 내 상상력의 공간을 지켜주던 기억이 난다. 내 머릿속에서 나의 정체성은 뜰에 아지트를 짓고 다락방에서 혼자 공작을 하던 70년대 소년 시절에 고착돼 있다.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란 그저 장난감을 사는 데 들이는 액수의 차이에 있다고 할까? 어린 시절에는 프라모델 비행기를 조립하거나, 김밥 싸는 나무 도시락을 잘라 글라이더를 만들며 놀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초경량 비행기를 사서 타고 다닌다. 비행클럽의 회원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비행이 꿈이었다고 대답한다. 그 시절 꿈이 어디 비행뿐이겠는가? 소년들의 꿈에는 우주 악당들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로망도 포함돼 있다. 영화 의 주인공은 어른의 몸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그 소년의 꿈의 화신일 게다.
에서 소년 시절의 꿈은 정말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이제 그들은 ‘예언서’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현실에서 실천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취미를 즐기는 이들을 ‘키덜트’라 부른다고 들었다. 이 문화론의 용어를 슬쩍 심리학적 용어로 전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소년 시절의 만화적 상상력을 성인들의 현실적 세계에서 실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랄까. 하지만 그 욕망은 오직 만화의 형식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내 눈에 일본 사회는 거대한 만화책으로 보인다.
<hr><font size="4">소년에게 과학은 무엇이었나</font><font color="#638F03">사이비 종교집단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분투’를 그린 만화, 20세기에 소년 시절을 보낸 ‘영락없는 우리들’이네</font>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과학자들에게 국제학회 참석은 잡다한 행정일과 수업에서 벗어나 ‘석학의 향기’를 맡고, 밀린 논문을 쓰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 귀한 시간이다. ‘출장’이라는 단어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고나 할까. 책장을 뒤적이며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 인터넷으로 저널을 뒤적거리며 읽어야 할 논문들을 프린트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설렘’이다.
지난해 가을 신경경제학회(Society for Neuroeconomics)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유타주에 있는 솔트레이크시티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욱 그랬다. 바로 직전 힘겹게 완성한 논문을 제출한 터라 마음도 가벼웠고, 여행 가방 한가득 만화책 24권을 잔뜩 담아갔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2권과 상·하를 벼르고 벼르다가 비행기와 호텔방에서 몰아서 읽었다. 아, 감동!
<font color="#008ABD">악을 탐구하는 만화가</font>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에는 ‘악’에 대한 인간적 성찰이 담겨 있다. 에서는 고고학자 마스터 키튼이 (연구에 전념하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보험조사관으로 일한다. 단서를 발굴해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찾아 가설을 증명하는 고고학의 방법론과 영국 특수부대(SAS) 교관을 지내며 익힌 전투기술을 활용해 갖가지 범죄를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마스터 키튼은 탐욕으로 얼룩진 범죄를 증오하면서도 범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속절없는 연민을 느낀다.
에서는 ‘악의 본질’에 대한 좀더 집요한 추적을 보여준다. 의사 덴마는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다. 그의 이름은 요한. 그는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하는 경우가 없다. 불안을 조장하고 가공의 적을 설정해 증오를 품게 하는 방식으로 타인의 마음을 조작해 살인을 저지른다. 마치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방식 그대로. 불행하게도, 요한은 동독에서 진행됐던 ‘인간 개조’ 실험으로 탄생한 악마다.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악’을 끌어내고, 덴마는 그것을 치유하려 애쓴다. (악의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은 로봇 격투를 다룬 (데즈카 오사무 원작, 우라사와 나오키 각색)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에는 늘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이 펼쳐진다. 마스터 키튼이 보험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덴마가 요한의 행적을 따라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온갖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과 목소리는 그 자체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확하게 포착한 대하만화’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힘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압도적인 필력, 현란한 사건을 뛰어넘어 머리와 가슴을 함께 울리는 만화적 지성”이라는 문화평론가 김봉석의 지적은 촌철살인이다.
에서도 ‘악에 대한 탐구정신’은 그칠 줄 모른다. 일본 전역에서 납치와 실종,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그것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 ‘친구’(도모다치)와 이를 지원하는 우민당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음모에서 비롯됐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친구’가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거대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파괴하는 일련의 과정이 30년 전 주인공 켄지와 그 또래들이 비밀기지에 모여 21세기를 상상하며 그렸던 ‘예언의 서’와 똑같은 시나리오가 아닌가! 만약 이대로 ‘예언의 서’가 실현된다면, 인류는 2000년 12월31일 절대악인 ‘친구’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은 지구종말론을 실현하려는 사이비 종교집단에 맞서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분투’를 그린 공상과학(SF) 만화다.
<font color="#008ABD">교과서와 의 과학</font>은 1960~70년대 소년 시절을 보낸, 그리고 과 와 에 심취했던 남성들이 열광할 만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은 이런 책에 별로 미혹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켄지와 그 또래들은 영락없이 우리들이었다. 당시 과 같은 학생 잡지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음모론을 소개하곤 했다. 로스웰 사건과 외계인, 히틀러 생존설과 UFO 제작설,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들, 일본에서 비밀리에 개발되고 있다는 생화학무기들, 핵전쟁 뒤의 지구 모습, 영국 스코틀랜드 네스호의 흑백 괴물 사진,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종말론까지. 당시 우리에게 과학이란 ‘교과서에 실린 따분한 공식’이거나 ‘에 실린 음흉한 디스토피아적 몽상’ 둘뿐이었다.
켄지와 친구들은 어린 시절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너무도 가고 싶어한다. 갔다 온 친구들은 날마다 자랑하고, 못 간 친구들은 자존심 상해하고, 어떤 친구들은 귀동냥으로나마 만국박람회 이야기를 들으려했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전시돼 있기에,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더욱 그랬다.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열린 1970년 여름방학, 켄지와 친구들에게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4년 ‘대전 엑스포(EXPO)’는 그나마 최근 일. 온 나라의 초등학생들이 ‘국풍81’이라는 관제 문화축제에 동원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 동원되지 않았던가!(‘국풍81’은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청와대 정무1비서관 허문도의 지시로 여론을 호도할 목적으로 1981년 5월28일부터 6월1일까지 닷새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한 대규모 관제 축제다.) 남들은 다 다녀온 ‘국풍81’을 구경 못 하면 놀림감이 되던 시절이었다.
또 ‘절친’들이 모여 밀담과 은밀한 비행을 공유하는 ‘비밀기지’를 한 번쯤 안 가져본 소년들이 있었을까?(비밀기지는 흔히 ‘아지트’라고 불린다. 사회주의 운동 과정에서 정부의 눈을 피해 비밀지령을 모의하는 지하운동 집합소로서, 러시아어의 ‘agitpunkt’ 혹은 영어의 ‘agitation point’에서 온 말이라지만, 우리들의 아지트는 ‘비행의 온상’이거나 ‘쓸데없는 과학실험을 위한 창고’에 더 가까웠다.) 서울 연희동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는 연남동과 연희동을 가르는 기찻길 철둑 밑에 나뭇가지로 비밀기지를 만들어 친구들과 전쟁놀이도 하고 에 나오는 풍만녀들의 사진 쪼가리들을 붙여놓곤 했다. 그때는 “나 어제 박치기왕 김일 봤다!”는 거짓말 축에도 못 끼었다. “우리 집에 로봇 있다!” “나 어제 외계인에게 끌려가서 외계 행성을 보고 왔다!” 정도는 돼야 “쟤가 한 구라 하는구나!”라며 귀기울여줬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종말론이 횡행하고 과학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21세기 현대인들의 모습을 20세기 소년 시절에서 찾는다. 그 시절 외계인과 UFO와 생화학무기들과 핵전쟁이 ‘과학의 전부’라고 믿었던 우리들의 소년 시절이 얼마나 촌스럽고 유치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이 현실의 악몽으로 재현되는 순간, 끔찍한 ‘악의 모습’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소름 끼치도록 정교하게 그려낸다.
<font color="#008ABD">우리는 20세기 소년 시절을 벗어났을까</font>에는 ‘본격과학만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여느 SF처럼 그리 대단한 ‘과학기술’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년 시절,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이었는가’를 끊임없이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훌륭한 SF다.
2009년, 그 시절의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지금 우리는 자유로울까? 황우석 사태 때 본 맹목적 애국주의, 광우병 파동에 대한 언론과 전국민의 감정적 대립,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 아직도 우리는 ‘20세기 소년 시절’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켄지는 중학교 방송반 시절, 클래식과 피아노 소품이 전부였던 교내 방송에서 티 렉스(T. REX)의 (20th Century Boy)을 튼다. 입시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경쟁, 사춘기의 내밀한 사유마저도 집단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중·고등학교 학제 시스템, 조폭을 연상시키는 또래집단의 위계질서, 그 시절엔 그토록 중요했던 의리와 용기, 주먹과 카리스마, 그리고 배신. 은 헤비메탈이나 로큰롤 외엔 그다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20세기 우리들의 뒤틀린 소년 시절’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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