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 없는 석사를 위조해주는 사회, 최근에는 ‘학벌사회를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존재미학’마저 이상해져버려
■ 진중권 자유기고가
학력에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사 학위만 갖고도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박사 아니면 그 알량한 강사 자리도 잘 안 주는 분위기다. 주위에서 강의를 하다가 갑자기 잘렸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상품의 값이 떨어지는 법. 강의를 하는 사람의 가격도 자본주의의 이 일반적 법칙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교원의 임용 기준이 강화됐다고 강사에 대한 대우 역시 강화됐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러니 전반적으로 사람값이 떨어진 것일 게다.
강사 자리를 잘리는 일을 지난해에 처음으로 겪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에 있는 어느 사립대학에서 2학기 때부터는 강의를 못 맡게 됐다고 연락이 왔다. “사유가 뭐죠?” “박사 학위가 없어서요.” 좀 아쉽기는 했다. 사이버 강의라 직접 강의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환상적 강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강생이 300명을 넘는 바람에 강사료도 꽤 짭짤했다. 하지도 않은 강의의 대가로 통장에 적지 않은 액수의 강사료가 찍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베냐민 못지않은 기술복제의 예찬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오, 위대한 인터넷이여.
“아, 그래요? 예, 알았습니다.” 건조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그쪽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미안하다’면서 자기들이 규정을 오해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예외입니다.” “왜요?” “교직 경력 10년 이상이거나 사계의 권위자인 분은 예외입니다.” 기가 막혀서 한마디 톡 쏘아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제가 독일에서 온 지 8년, 교직 경력이 아직 10년이 안 됐거든요? 게다가 이른바 ‘사계의 권위자’라는 분들을 평소에 좀 우습게 보는 편이라, 그런 거 되고 싶은 생각 없거든요.”
고작 강의 자리 하나에 ‘박사’ 밝히는 것도 짜증났지만, 무엇보다도 ‘사계의 권위자’니 뭐니 하는 촌스러운 표현이 내 섬세한 미감에 심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게다가 자기들이 먼저 나보고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해준 거지, 내가 언제 자기들한테 강사 자리 달라고 졸랐나? 잠시 후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것은 행정의 착오였으며, 내가 강의를 안 하면 자신이 곤란해진단다. 그래서 당신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이상한 조항을 새로 만들어낸 그 인간들이 재수 없어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그런 전화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그 강의는 맡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같은 석사인데, 잘 팔리는 책 몇 권 냈다고 왜 나만 예외로 인정받아야 하는가? 석사 학위만 갖고 그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분들 중에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잘 팔리는 책을 쓸 이들도 얼마든지 있을 게다. 그러니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강의를 맡을 수 없다’는 게 거부할 수 없는 대학의 정언명법이라면, 다른 석사 출신들과 기꺼이 그 보편적 운명을 공유하는 게 윤리적이라 판단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뒤, 공교롭게도 바로 그 대학의 어느 과에서 이번엔 겸임교수를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석사라서 강사를 못하는 대학에서 석사가 겸임교수는 할 수 있다? 삶의 이치는 이렇게 심오하다.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정작 나도 관심 없는 내 학벌에 남들이 더 신경을 쓴다는 사실.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사태와 관련해 ‘거시기’한 우익 매체에서 일제히 내가 박사가 아니라고 집요하게 모욕을 해댄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그자들은 모두 학사이다. 이렇게 석사가 학사에게 학력 차별을 당하는 게 대한민국에 사는 묘미다.
그 반대의 방향으로도 그에 못지않게 짜증나는 경험을 한다. 사실 이놈의 ‘박사’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유명인의 학벌 위조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 어딘가에 이렇게 쓴 바 있다.
“요즘 학벌 위조한 사람들 적발해내느라 사회가 발칵 뒤집혀졌다. 내 경우에는 외려 반대의 경험을 한다. 나는 열심히 진짜 학벌을 밝히고 다니는데, 사회가 그것을 애써 감추어두고 자신들이 막 내 학위를 위조해준다. 강연에 가서 늘 듣는 소개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명예박사 학위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라며 농으로 받아넘기지만,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는 짜증이 난다.
얼마 전 한국의 학벌주의 폐해를 논하는 방송사의 토론에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보내준 패널 소개를 읽어보니, 이번에도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란다. 황당해서 도대체 학벌주의를 철폐하자고 하는 방송에서까지 굳이 학벌을 밝히려 한다. 그냥 ‘중앙대 겸임교수’라고만 하면 안 되나? 도대체 내가 어느 대학 나와서 무슨 학위를 받았는지, 그게 토론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대개 강연을 하면 주최 쪽에서는 자신들이 부른 강사를 대단한 사람으로 부풀려야 한다. 실제로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은 적 없다고 수정을 해주면, 청중 중에는 실망하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잡지사에 글을 기고할 때도 마찬가지다. 잡지사 쪽에서는 자신들의 기고자에게 되도록 좋은 학벌의 후광을 뒤집어씌우려 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일 당할 때마다 모욕감을 느낀다.
교수 자리 줄 테니 박사 학위를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저 교수가 되려고 학위를 받는 것은 내 삶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 굳이 정교수 자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데 큰 불편을 못 느낀다. 학위를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미국에 가서 조종사면장을 따고 곡예비행을 배우는 게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리라 믿는다. 사회가 학벌을 차별한다고 굳이 사회의 요구에 맞춰 학벌을 딸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조선시대 상민들이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해 스스로 양반이 되려고 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굳이 사회 요구에 맞춰 학벌을 따야 할까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도 이미 그때 내려놓았다.
“실력을 갖고도 학벌이 없어 인정을 못 받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사회만 탓하는 것도 그리 생산적인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사회와 개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는 그런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없애는 데 노력을 해야 하고, 개인은 학벌을 위조하는 위법이나, 그 차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는 편법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그런 차별의 벽을 돌파해나가는 존재미학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명예는 힘든 그만큼 더 고상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사회 분위기가 참 더럽게 이상해졌다.
<hr>청춘을 온전히 바치다널린 게 박사인 시대… 박사는 질문에 대면하는 용기,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조지 참(Jorge Cham)은 1997년부터 자신의 대학원 생활을 3~4컷의 만화로 그려 웹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만화 속에는 실력은 없으면서 모든 명예를 독차지하려는 이기적인 지도교수, 연구하는 게 너무 싫어서 ‘해야 할 일’(to-do list)을 날마다 미루며 게임에 빠진 대학원생들, 연구에 기여는 별로 안 하면서 논문에 이름이 올라가길 원하는 연구 동료들, 품위 있는 단어로 젠체하며 ‘당신 논문 형편없어!’를 외치는 논문 심사위원들 등 ‘대학원생이 겪는 일상’들이 시니컬하게 풍자돼 있다.
이 만화는 학생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고, 그는 박사를 받은 뒤에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고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전세계 대학원생들과 ‘대학원 생활을 이미 겪은’ 연구자들의 높은 방문 수를 자랑하는 인터넷 사이트 www.phdcomics.com을 운영하며 ‘학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중요 변수는 매번 돌변하는 교수의 마음이 사이트에 실린 만화 중에서 ‘박사가 되기 위한 뉴턴의 세 법칙’이란 게 있다. 우선 하나는 ‘관성의 법칙’. 세상의 모든 대학원생은 교수라는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계속 ‘할 일 미루기’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두 번째 법칙은 ‘F=ma 또는 a=m/F’로 표현되는데, ‘힘의 법칙’을 연상시키는 이 법칙에서 a는 가속도가 아니라 박사과정을 마치는 나이(age)를 의미한다. 박사 학위를 받는 나이는 학생의 성취동기(m·motivation)가 높을수록 짧아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가 ‘지도교수의 매번 돌변하는 마음’(f·flexibility)이라는 것. 지도교수가 마음 내킬 때 학위를 주기 때문에 때론 매우 길어질 수 있다는 뜻. (물론 성취동기가 0이 돼도 박사 수학 기간은 무한정 늘어난다.)
세 번째 법칙은 ‘작용반작용의 법칙’. 박사과정에서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항상 그것을 방해하는 일들이 꼭 터진다는 것. 박사 자격시험을 볼라치면 몇 년간 없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생기고, 논문 심사 막바지에 가면 잘 지내던 그·그녀와 꼭 깨진다는 것. 이래서 알량한 박사 학위 증명서 하나를 받는 데 젊은 청춘을 온통 바쳐야 한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 수는 1970년 152개에서 2008년 368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대학 진학률도 28.6%(1970년)에서 83.8%(2008년)로 급증해 일본(49.1%)이나 미국(63.3%)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이 중 이공계 대졸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38.9명으로, 미국(111.0명), 독일(82.1명), 일본(126.9명)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공계 박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9명으로, 스위스의 5분의 1, 독일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취직이 잘 안 돼서 대학원에 간다’는 학생들의 말을 종종 들을 정도로 박사과정에 들어간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때론 ‘우울한 미래’인 모양이다.
“물리학? 그럼 박사 받으면 나중에 뭐가 되는 거야?” “물리학자.” “그게 직업이야?”
내가 박사과정 때 여학생들이 제일 많이 물어본 질문이다. 나는 25살이 돼서야 물리학자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의 종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소개팅한 여학생들만이 아니라, 같은 과 대학원생들도 나를 많이 걱정해줬다. “물리학 박사가 뇌를 연구하면 나중에 뭐가 될 수 있냐?”
대통령보다 박사라 불리고 싶었던 이승만으로부터공대생들에 비하면 비전 없기는 마찬가지인 같은 ‘물리학과 박사과정’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내 자신이 비참할 만도 한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철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연구가 좋아서 했지, 미래나 직업은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석사 때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나를 ‘취직이 안 될 거라며’ 걱정해주던 친구들에게 ‘뇌 모델링’에 푹 빠져 사는 내가 ‘얼마나 현실감각 없는 철부지로 보였을까’ 지금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평균 6.7년(석사 2년 포함). 그 뒤에도 정식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박사후 과정(postdoc fellow)을 필수적으로 밟아야 하니 청춘을 온전히 바쳐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연봉은 훨씬 적게 공부한 의사나 변호사의 절반 수준이니 자괴감이 들 만도 하다. 매년 출간되는 정부 보고서는 국내 이공계 인력의 직무환경 만족도가 70%를 상회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에 비해 45% 이하로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연구 독립성이나 자기 계발 만족도도 점점 떨어지는 추세라고 일러준다.
그렇다면 왜 대학원생들은 박사를 받기 위해 밤마다 연구실의 불을 밝히며 ‘연구’라는 걸 하는 걸까?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는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평생 탐구하는 삶이 가장 고귀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가를 이해하는 경이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해서,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자연과 생명의 싹을 틔우고, 이렇게 ‘의식하는 존재’ 인간을 만들었는지를 탐구하며 사는 삶은 돈 따위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사람들은 때론 ‘요즘엔 널린 게 박사’라며 이승만 시대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너무 많아진 박사들을 무시한다(실제로 이승만 시대엔 박사가 대통령보다 귀해서 이승만은 ‘박사’라는 호칭을 더 듣길 원했다고 들었다). 사람들은 또 ‘요즘 박사는 공부의 깊이가 얕고 너무 좁은 영역을 파고들기만 한다’며 ‘넓을 박’(博)의 박사(博士)가 아니라 ‘엷을 박’(薄)의 박사(薄士)라고 경박해진 박사를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 그만큼 인간의 지식이 방대하게 쌓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이해하기에 인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삶을 분석한 어느 과학사회학자의 책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 연구의 아이디어’를 처음 착상한 시기가 평균 36~38살이라고 한다(노벨물리학상은 36살, 화학상은 37살, 생리의학상은 38살). “물리학자는 30살이 넘어가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없다”는 닐스 보어의 말과는 달리, 현대 과학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존 연구들을 이해하는 데 씨름해야 한다.
무릇 ‘박사’란 그저 ‘아무도 던지지 않았으나 매우 중요한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논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사고 과정을 통해 그 답을 스스로 찾아 세상에 새로운 지식 하나는 던지는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증이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는 이제 지도교수의 지도에서 벗어나 ‘독립된 연구자’로서 세상에 나가, 수많은 질문들을 자신 있게 대면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제 분야에서 모든 걸 알고 있기를 기대하지 마시라.
가장 열정적이던 시절고백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절은 박사과정 때였다. 박사과정이 행복한 이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수많은 책과 논문들과 자료들을 미친 듯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리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며 데이터와 씨름하고, 논문의 문장 하나를 수정하는 데 며칠 밤을 새울 수 있는 열정의 추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부여받은 삶은 많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나가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내게 꿈이 있다면, 내 사회적 나이가 끝나고(정년퇴임까지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물학적인 나이가 허용하는 날까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해 대학원생의 마음으로 ‘박사’ 공부를 해보는 거다. 인류학이나 경제학, 건축학 같은 근사한 학문에서 인간이 쌓아올린 지식들을 모르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니까.
박사에 대한 음담패설 중에 박사 학위의 약어인 ‘Ph.D.’가 ‘Pretty Huge Dick’(매우 큰 성기!)을 의미한다는 게 있다. 그러나 나는 ‘Ph.D.’가 ‘Pretty Huge Dream’(매우 큰 꿈)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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