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말없이 “베고 한잠 자”

베고 누울 수 있는 ‘남자친구 팔베개’ ‘여자친구 무릎쿠션’ 등 위로산업 번창 중
등록 2008-10-23 16:00 수정 2020-05-03 04:25

위로가 필요하다. 누군가 따뜻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줬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 깊은 얘기를 토 하나 달지 않고 끝까지 들어줘 털끝만큼의 앙금까지도 휘발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싫으면 팔이라도 쓱 내놓으며 “베고 한잠 자” 하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내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내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혼자 사는 ‘솔로’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뼈아프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장은진씨가 ‘남자친구 팔베개’ 쿠션을 쓰는 요령을 선보이고 있다. 장씨가 붙잡고 있는 두 팔이 든든해 보인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장은진씨가 ‘남자친구 팔베개’ 쿠션을 쓰는 요령을 선보이고 있다. 장씨가 붙잡고 있는 두 팔이 든든해 보인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베고 누우면 자장가를 불러주는 느낌”

이런 이들을 노린 ‘위로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얻지 못하는 심리적 공감을 대신 제공해주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쿠션과 인형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사람과 달리, 늘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 제품의 장점이다.

서울메트로 직원인 장은진씨는 ‘남자친구 팔베개’ 쿠션을 2년째 애용하고 있다. 남자의 몸통에 팔이 달린 형태의 이 제품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꼭 남자친구의 팔을 베는 느낌이란다. 장씨는 잠을 잘 때 이 쿠션을 주로 쓴다. 장씨는 “2년 전, 남자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힘들었는데 언니가 옆에 두라고 사다 줬다”며 “베고 누우면 팔이 가슴으로 올라와 누군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쓰다 보니 푹신도가 조금 떨어지긴 했는데, 요즘엔 가끔 집에 놀러온 사람들이 더 즐겨 쓴다”고 덧붙였다. 혼자 살면서 자신을 위로해줄 만한 사람이 없는 이들이 쓰기에 딱 좋다. 모양은 똑같으나 여성 느낌이 나는 ‘여자친구 팔베개’ 쿠션도 나와 있다. G마켓에서만 일주일에 50개가량이 팔려나간다고 한다.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의 ‘여자친구 무릎 쿠션’도 있다. 그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누우면 마치 여자친구의 무릎을 베는 느낌이 난다.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인형도 있다. 머리와 배, 꼬리에 촉감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서 주인이 놀아주지 않으면 실제 올빼미 우는 소리를 낸다. 주인이 쓰다듬어주거나 함께 놀아주다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이 밖에 주인이 하는 말에 따라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현하거나 가로저어 부정을 표현하는 인형들도 출시돼 있다.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왕호랑이 새싹 노호혼’은 태양열을 받으면 풀잎이 살랑거리면서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다. 쳐다보고 있으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며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관련 매출 30% 정도 늘어

인터파크의 경우는 이런 침구 및 인테리어 용품의 수가 올해 들어 20%가량 늘고 관련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정도 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트렌드연구소의 김경훈 소장은 “주변에서 위협과 안전의 민감도가 높아지고 변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마음의 생채기를 일상 속에서 반창고를 붙이듯이 치유받으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그런 욕구에 대응하는 비즈니스가 위로산업으로, 갈수록 확산되고 다양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