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는 자극만으로 오르가슴이 가능하다는 마스터스·존슨의 실험은 그후 어떻게 반박되었나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흥분한 남자가 오랜 피스톤 운동 뒤 2억 개의 정자가 담긴 2cc의 정액을 여자의 질 속에 방출하는 순간, 여성의 몸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황홀한 섹스의 순간, 그들의 몸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copulation)는 사실 해부도가 아니라 상상화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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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를 42분 만에 볼트처럼 달리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1999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 안에서 남녀가 섹스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British Medical Journal)에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MRI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보고했는데, 그 결론이 바로 다빈치의 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MRI 영상에 따르면, 성행위 때 음경은 질 내에서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 있었으며, 삽입된 음경은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20°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성기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지난번 칼럼이 나간 이후, 독자들로부터 ‘황홀한 순간’에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여성의 질에서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르가슴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부메랑 구조와 관련이 있는 걸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오르가슴의 실체가 무엇인지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이 호기심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과학자다.
고환에서 74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낸 정자들은 약 20일 동안 부고환과 정관을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된다. 그러다가 섹스의 순간 피스톤 운동과 함께 여성의 질로 방출된다. 정자의 크기는 0.05mm. 꼬리 길이가 90%를 차지하는 이 올챙이 모양의 정자들은 사정 뒤 75~90%는 질 안에서 바로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정자의 전진 속도는 분당 3mm 정도.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cm를 27분 만에 도달하고, 여기서 다시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의 10cm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나팔관까지 18cm를 여행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약 70분. 이 길이는 정자 몸 길이의 3천 배나 되지만, 약 29.5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정자보다 8만5천 배나 큰 단 하나뿐인 난자와 결합하기 위해 2억 마리의 정자들은 ‘자메이카의 총알’ 우사인 볼트만큼 맹주한다. 여성은 평생 500~1천 개 정도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던 윌리엄 마스터스는 버지니아 존슨이라는 여성 조수와 함께 생식생물학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안 질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은 피스톤 운동을 하는 페니스 카메라, 일명 ‘성교기계’를 만들어 인공성교 실험을 했다.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생긴 길쭉한 카메라가 질 안에서 피스톤 운동을 하게 해 질 속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이 기계는 ‘수백 차례의 완성된 성반응 주기’를 촬영했고 이 연구는 질의 윤활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섹스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를 정리한 (파라북스, 2008)의 저자 메리 로취에 따르면, 일반인들도 ‘골반경’이란 걸 사용하면 누구나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물론 여성이거나 여성과 함께 작업을 해야겠지만). ‘스쿨 오브 원’(School of one)이란 단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 장치는 자궁이나 질의 변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삽입형 비디오카메라다.
오르가슴에 오른 30%의 메커니즘?
마스터스와 존슨은 페니스 카메라를 이용해 인공성교를 하는 동안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해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선 페니스 카메라가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동안 질 안에선 윤활작용이 일어났는데, 섹스 때 질이 축축하게 젖는 이유는 샘에 의한 분비작용이 아니라 질 내의 모세관 벽에서 스며나오는 혈장에 의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그전까지 그걸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실험 뒤 피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플라스틱 성기를 이용한 인공성교기를 이용했던 여성들의 70%는 단순한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진 않았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실험에 참가한 여성 중 30%는 카메라의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피스톤 운동에 의한 여성의 오르가슴,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스터스와 존슨의 페니스 카메라 실험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었을까?
우리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피스톤 운동이 어떻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마스터스와 존슨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진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실험을 통해 얻은 영상으로 유추한 결론은 남성의 성기가 질 안으로 들어와 진동운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진 않지만, 남성의 성기가 소음순을 끌어당기고, 소음순이 당겨지면서 클리토리스를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1984년 콜롬비아의 한 과학자 그룹이 마스터스와 존슨의 추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겨지는 소음순이 여성 오르가슴의 실체는 아닐 것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콜롬비아 칼다스 의대 의사이자 성과학 교수인 헬리 알사테 박사와 그의 동료인 심리치료사 라디 론도뇨는 성매매 여성 16명(실험 참가를 위해 그들에게 1인당 16달러씩을 지불했는데, 이 금액은 당시 콜롬비아에서 성매매 여성이 받는 돈의 몇 배나 되는 액수였다고 한다)과 여권주의자 32명(무보수)을 실험실로 불러 질의 성감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은 좀더 단순했다. “조사자가 손을 씻은 다음, 윤활제를 바른 집게손가락을 피험자의 질 속에 넣고 양쪽 질벽에 체계적으로 마찰을 가한 뒤에 질벽과 일정한 각도를 이룬 채 질의 하반부에서 상반부로 진행하면서 중·강 정도의 압력을 주기적으로 가했다”고 논문은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피험자들이 경험하는 오르가슴이 연구자가 손가락으로 찌르는 동작으로 인한 당김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음순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비슷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결론은 플라스틱 성기의 피스톤 운동은 결코 대부분의 여성들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할 수 없으며(다시 말해 마스터스와 존슨의 연구결과는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소음순을 당기는 것만으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되지도, 오르가슴에 도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뒤 메리 로취는 마스터스와 존슨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마스터스는 이미 죽었고 버지니아 존슨은 접촉을 꺼렸다.
또 다른 결론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과학실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런 연구는 인간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고 불감증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받아야 하지만, 남성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만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페니스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 자체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남성들에게 좀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은 결코 포르노에 나오는 슈퍼 남녀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섹스’로는 배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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