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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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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 “니가 나를 알아?”

등록 2008-07-08 00:00 수정 2020-05-03 04:25

사전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높아지는 ‘공감정확도’,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른다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여보, 백화점 문화센터 아줌마들이 모여서 내 흉을 봤대지 뭐예요.”

아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당신은 뭐라고 대꾸하는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든가, 혹은 “그러게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말라 그랬지?”라고 핀잔을 주진 않는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식의 말을 건네는 이유는 어떤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관심’과 ‘공감’을 얻기 위해서인데(혹은 공감만으로도 충분한데), 남편은 종종 이런 말을 질문이라 여기고 자신이 무슨 해답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식의 대꾸는 때론 부부간의 불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당신 부부의 ‘공감정확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답은 필요없어, 공감이 필요해

우리는 함께 살거나 생활하면서 매 순간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춰 반응하고 행동해야만 적절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이처럼 타인의 관점에서 상상해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직감하는 것을 ‘공감’(empathy)이라고 한다. 공감 능력이야말로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능력이며,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이런 공감 지능이 사회적 리더가 되는 데 매우 필요한 능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더 공감을 잘하게 되는가? 공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인 미 텍사스대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이케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2003년 (푸른숲, 2008)이란 책을 출간해 미국에서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는 어떻게 사람들의 공감을 측정하는지와 부부간의 공감 능력에 대한 변화가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케스 교수는 설문조사가 심리학 실험의 전부였던 당시 연구 풍토에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행동 모니터링’ 기법을 처음 개발한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실험 대기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실험은 공감 연구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실험 방법이 되었다.

그가 사용한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실험자는 낯선 피험자들을 실험실로 초대한 뒤 ‘여러 개의 슬라이드를 보면서 평가하는 과제’를 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작은 탁자 위에 있는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가동하기 위해 스위치를 켠다. 그때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면서 프로젝터 전구가 터져버린다. 실험자는 당황하며 “새 프로젝터 전구를 가져와야겠네요”라고 말한 뒤 실험대기실을 떠난다. 실험자가 방을 나간 뒤 6분 동안 두 피험자는 함께 있게 되는데, 이 시간 동안 그들이 보인 상호작용은 몰래카메라로 녹화된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을 함께 보며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은지’ 유추하라고 질문한다(물론 몰래카메라 실험은 피험자들의 동의를 구한 뒤에만 연구에 사용한다).

보통 이런 실험을 하면, 이성 피험자와 함께 있는 경우 남성들은 웃음이나 몸동작, 눈맞춤 등의 시간이 여자들보다 짧고 그 빈도가 낮다고 한다. 피험자가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추측하는지를 나타내는 정도를 ‘공감정확도’(empathic accuracy)라고 하는데,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공감정확도가 더 높다고 한다(당연하겠지!).

이케스 교수에 따르면, 친구들끼리는 6분 동안 다양한 행동과 말을 통해 서로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공감정확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전 정보의 양’이라고 한다. 이처럼 공감에 필요한 지식은 대부분 매우 사적인 것이어서, 친밀한 관계에서 표현되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면서 얻게 된다. 이케스 교수는 ‘외부의 관찰’을 통해서 얻는 배경지식은 그 사람이 대략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데는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정보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해온 부부들은 사전 정보가 많을 테니 공감정확도가 높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뉴질랜드의 심리학자 지오프 토머스와 그 동료들은 뉴질랜드 캔터베리 지역에 살고 있는 80쌍이 넘는 부부들을 초청해 인간관계 문제를 토론하게 하고 그 과정을 녹화했다. 녹화가 끝난 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그들이 토론에서 경험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 결혼 기간이 길수록 공감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들은 최근에 결혼한 부부들보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추측하지 못했다.

모른다, 하지만 철석같이 안다고 믿는다

사회심리학자 클리퍼스 스웬슨과 그 동료들은 1981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미국인 부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바 있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르며, 서로의 감정, 태도,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예측하는 정도가 더 떨어진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더욱 불행한 것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공감이해력이 감소된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아내와 남편을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부들은 언제부터 서로에 대한 공감정확도가 떨어지기 시작할까? 충격적이게도, 대다수가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 셸리 킬패트릭과 그 동료들은 신혼부부들을 3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결혼한 지 6개월이 된 시점보다 1년 반이나 2년 된 시점에서 부부의 공감정확도가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오래된 부부들은 친밀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진정으로 나누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에 근거해 잘못 이해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부부는 시간이 가면서 계속 변하는데, 그들 사이의 친밀한 의사소통이 줄어들면서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줄어들고 결혼 초기에 형성된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라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부정확해지고 고정관념처럼 굳어진다.

지오프 토머스와 그 동료들은 결혼한 첫해에는 부부들이 결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읽으려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잘 이해한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돼 서로의 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려는 동기가 떨어지고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통의 화제가 줄어들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며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장기적인 결과로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감정확도가 전반적으로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들은 서로의 독특한 인지적·정서적·행동적 성향을 인식하고는 그에 반사적으로 적응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러한 습관이 고착되면 부부들은 자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반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욕구를 고정된 방식으로 예상하고 행동할 것이다.

자녀의 자기 존중감도 높아지네

권태기는 부부간의 대화 단절과 소통 불능으로 시작되며 그 중심에는 ‘공감 저하’가 자리한다.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순간 부부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한결같이 부부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읽을수록(또 그러기 위해 노력할수록) 결혼생활에 더 전념하고 적응하려 애쓰며, 결혼생활에 대해 훨씬 더 만족스러워했다고 보고한다. 게다가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부모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부모의 자녀들보다 자기 존중감이 더 높았다고 하니, 공감 능력은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된다. 공감 지능, 이제 내 아내, 내 남편을 위해 발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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