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알면서도 속고 속이는 연인들… 남자는 자존심을 위해, 여자는 배려하려고 많이 해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세상에서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은 뭘까? 지난 2000년 미국의 한 여성잡지사가 네티즌을 상대로 했던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거짓말은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사랑해”.
60%가 거짓으로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사랑해’가 다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때로 연인의 몸을 얻기 위해,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기 위해, (혹은 비참하게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사랑해”를 말하기도 한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심지어는 “네가 원하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수 있어” 같은, 전 우주적 스케일의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말이기에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거짓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60%가 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너뿐이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해” 같은 말에 연인들이 기꺼이 속는다는 것이다. ‘무뚝뚝한 곰보다 이런 거짓말이라도 하는 여우가 낫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선의의 거짓말’로 여자친구나 아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가끔은 이런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사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자기, 하루 종일 내 생각 많이 했어? 나 많이 보고 싶었어?”라고 애교스럽게 묻는 아내에게 “오늘 일이 많아서 네 생각 전혀 못했어. 미안해. 내일은 할게”라고 솔직히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아내들이여, 이런 ‘거짓말 조장 질문’ 제발 하지 마시라!)
그렇다면 남자들의 거짓말과 여자들의 거짓말은 어떻게 다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심리학과의 모린 오설리번 박사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 어떤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분석했다. 그의 연구결과를 보면 남자와 여자 모두 가끔씩 거짓말을 주고받지만 그들이 하는 거짓말의 내용은 확연히 달랐다.
대학생을 상대로 한 이 조사에서, 남자들은 연인에게 주로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대답했으며, 결혼과 같은 장래 계획을 이야기할 때도 거짓말이 튀어나온다고 고백했다. 특히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말을 종종 했으며 여자가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거짓말로 얼버무렸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자신이 여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능력이 있으며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결혼과 같은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거짓말을 활용하고 있었다.
반면 여성들이 자주 하는 거짓말은 남자들과 목적이 크게 달랐다. 여자들은 성관계 뒤 남자의 성적 능력에 대한 느낌을 말하거나 오르가슴을 얼마나 느꼈는지 말해야 할 때 솔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자신의 얼굴이나 몸매에 대해서 물어볼 때도 가끔 거짓말을 했다고 대답했으며(도저히 솔직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지적인지 물어보는 질문에도 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의 처녀성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미국에서도 여성의 처녀성이 중요한 이슈라는 점은 다소 놀랍다.
여성의 결혼생활이 더 행복한 이유
남자는 사랑하는 여성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며 나의 미래는 당신이 믿고 따를 만큼 밝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반면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이 자신감을 유지하고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배려의 거짓말을 한다. 남자들은 돈이 많고 우리가 장기적인 관계를 갖길 바란다는 신호를 여자에게 주기 위해 과장된 언어를 사용하며, 여자들은 남자에게 정절과 임신 능력을 과시하고 사랑의 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상대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상대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거짓말은 근사한 여자친구를 아내로 맞고 멋진 남자를 남편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을 것이다. 미국 드폴대 림 콜 박사가 2001년 에 제출한 논문에 따르면, 연인들이 서로 거짓말을 주고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실제로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가 128쌍의 연인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연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난을 막고 화를 풀어주기 위해,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실제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당시에 그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믿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연인들도 그것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거짓말을 교묘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랑에 빠진 대부분의 연인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음에도, ‘나는 별로 거짓말을 안 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설리번의 조사에서, ‘모든 커플이 종종 거짓말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흔쾌히 인정하는 연인들이 “당신도 가끔 거짓말을 합니까?”라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게 한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신이 거짓말을 덜 하며 심지어 다른 여성에 비해서도 거짓말을 덜 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이라고 볼 수 있는데, 때론 이런 자기 기만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기 기만 덕분에 결혼 뒤 ‘내가 선택한 상대가 가장 적합한 짝’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확신 없이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결혼 뒤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상대에게 잘 적응하며 높은 만족도로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개 거짓말은 관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Romantic Deception: The Six Signs He’s Lying)라는 책에서 저자 샐리 캐드웰은 선의의 거짓말을 넘어선 기만행위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진실이 상처가 될 때…
여성과 달리 남성은 종종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관계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때론 둘의 관계를 기대와 실망 속에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과거의 결혼 경력, 교육, 직업, 경제적 능력 등에 대해서는 절대 속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렇다면 연인들은 언제 거짓말을 해야 하며 언제 하면 안 되는가? 놀랍게도 그 판단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대개의 경우, 진실이 거짓말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을 위해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해도 되는 유일한 예외는 “진실이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될 때”이다. 오직 이때에만 거짓말이 용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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