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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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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분노하네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떠나는 사람은 담담한데 버림받은 사람은 왜 비탄-자조-격노 ‘비용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을 겪는가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저는 도저히 지금 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입술은 바싹 타고 있어요. 오, 그대가 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오, 그 누가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2500년 전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가 쓴 이 시구는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한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류학자들의 고고학적 문헌 연구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에서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과 시베리아까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나 글귀가 발견됐다고 한다. 전 시대를 거쳐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인류는 사랑의 실패가 주는 아픔을 경험해왔다는 것이다.

뇌는 모르는 거니? 사랑의 시작과 끝을

물론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연구 주제이지만, 뉴저지주립대학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수행해 현대인에게 실연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인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3%의 대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95%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찬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대학생 90% 이상이 이미 누군가를 사랑했고 결국 사랑했던 연인을 버렸거나 그로부터 버림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35살 이하의 남녀에게 같은 설문을 해본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된다.

깊은 사랑 뒤에 찾아오는 이별의 고통은 지독하다. 사포의 표현대로, 밥을 먹을 수 없고 몸이 아프며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다. 마치 심한 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상실의 고통은 온몸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이별은 우리가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게 해준다.

“사랑이 깨졌나요? 그런데도 그 사랑을 그냥 보낼 수 없나요?” 헬렌 피셔는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스토니브룩에 위치한 뉴욕주립대학 심리학과 게시판에 붙였다. 실연당한 학생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촬영해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 공고문이 게시판에 올려지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고, 2005년 실험은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퇴짜를 놓은 애인들의 사진과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뇌영상을 찍게 되었다.

실연의 고통을 느끼는 동안 도대체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헬렌 피셔의 실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실연당한 자들의 뇌에선 사랑이 처음 시작됐을 때 관련되는 모든 신경회로와 신경전달물질이 다시금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이 시작되면 연인들에게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고 늘 함께 있고 싶고 갈망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을 흥분 상태로 만드는 ‘노르에피네프린’, 긴장하게 만들고 스트레스 상태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이 세 녀석이 실연당한 사람의 뇌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만족감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 역시 일치했다. 실연당한 사람의 뇌는 마치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안달이 난 ‘첫 만남의 뇌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뇌 상태였던 것이다.

쾌락이 사라졌을 때, ‘좌절-공격’ 가설

흥미롭게도, 이별 뒤에 과다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실연당한 자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기와 몸살을 선사한다. 낙심한 연인들이 고열에 시달리게 되거나 입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실연으로 앓아누운 연인들은 말 그대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연당한 사람은 처음 사랑이 찾아올 때 감정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신과 의사 토머스 루이스와 리처드 래넌에 따르면, 우리가 이별할 때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느꼈던 홍역을 치러야 하는 것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이 강력한 ‘항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해 포유류는 상대가 자신의 사랑과 애착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통해 몸을 강한 흥분 상태로 만드는데, 낭만적 사랑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바로 그 화학물질들이 흠모의 열정과 이별 뒤의 두려움을 더욱 격정적으로 만들고, 이 부당한 이별에 대해 분노하고 신체적으로 항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때론 실연당한 자의 이런 항의 상태가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지만, 그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잦은 이별이 때론 오래된 연인에게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사랑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런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떠나본 뒤에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실연당한 사람이 그토록 항의성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떠나는 연인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상대에 대한 동정심과 추억을 간직한 채 연인 관계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은 비탄과 격노 사이를 오가며 격정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포도주가 가장 독한 식초로 바뀔 수 있듯이, 깊은 사랑도 한순간 가장 지독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는 영국의 시인 존 릴리의 오래된 시구처럼 말이다.

헬렌 피셔는 저서 (생각의 나무·2005)에서, 이것을 좌절-공격 가설로 설명한다. 인간은 혐오와 분노를 느낄 때 편도체와 시상하부, 뇌섬엽 피질 등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 영역은 쾌락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중심부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자신이 기대했던 보상이 위험한 처지에 놓이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전전두엽 피질은 편도체에 신호를 보내어 분노를 촉발시킨다.

좌절-공격 이론에 따르면, 기대했던 기쁨이나 쾌락이 실현되지 못하면 곧바로 분노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고양이의 쾌락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고양이는 격렬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자극을 거둬들이면 고양이는 갑자기 난폭해지는 것이다. 쾌감을 박탈할 때마다 고양이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낭만적 사랑의 쾌감에서 한순간 거절당한 연인의 분노를 이 실험 결과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추론이다.

분노하라,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신체적으로 봤을 때, 분노는 ‘치러야 할 비용이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왜 버림받은 연인에게 그 자신이 흠모했던 사람을 쉽게 혐오하도록 만들었을까? 정신과 의사 존 볼비는 자신의 논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놓은 생물학적 설계’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많은 경우, 이별이 주는 분노를 표출할수록 연인을 되찾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에 대한 매몰찬 분노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준비해준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별의 분노를 충분히 토해내지 않을수록, 그래서 상대에 대한 미련과 애정의 앙금이 남아 있을수록,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연인들이여, 실연의 분노를 받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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