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일까? 여성들은 왜 애인 있는 줄 알면서 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의 자서전 (휴먼앤북스·2005)은 그가 노년에 쓴 것으로, 사후 조카의 손에 넘겨졌다가 1820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출판됐다. 다소 과장되긴 했겠지만 믿을 만한 자료라고 평가받는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섹스의 탐닉자’였다.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98)는 자매와의 더블섹스로 첫 경험을 시작해 19살 때 유부녀 루크레치아와 불륜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를 몰래 지켜보던 그녀의 동생과도 잇따라 정사를 갖는다.
아름답고 잔혹한 ‘양다리’의 달인들
36살의 카사노바는 한 아가씨를 유혹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아가씨는 루크레치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딸. 이 사랑은 끔찍한 근친상간이었던 것이다. 옛 애인을 찾아 수녀원에 간 카사노바는 수녀를 유혹해 정사를 벌이기도 하고, 처형장 앞에서 애정 행각도 서슴지 않는 등 호색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문학에 심취해 늘 책에 빠져 있었으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문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럴수록 그의 지적인 면모는 그를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문헌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콘돔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살던 시대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부드러운 라텍스 재질의 콘돔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염소나 돼지의 맹장을 말려서 콘돔으로 사용했다. 콘돔 입구에는 리본을 달아 묶을 수 있게 만들어서, 착용을 했을 때 성기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요즘 콘돔과 다르다. 당시만 해도 콘돔은 귀한 물건인지라, 카사노바는 콘돔을 사용한 뒤에 물에 씻어서 다시 재활용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물론 콘돔의 거친 재질이나 재활용의 불편함도 그의 바람기를 잠재우진 못했지만 말이다.
카사노바와 함께 최고의 바람둥이로 손꼽히는 돈 주앙 역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중세 민간 전설에 처음 등장했던 이 바람둥이 귀족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으로 유명해졌는데, 여자를 유혹했다가 죽이는 엽기적인 행각을 거듭하다가 성직자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그의 보헤미안적인 풍모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은 여성들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카사노바나 돈 주앙처럼 역사를 뒤흔든 바람둥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바람기가 농후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으며 (반드시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를 가질 필요는 없다), 화술에 능하며, 쿨한 성격을 가졌고, 무엇보다 이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때론 지적이며, 유머가 풍부하고, 사소한 행동에서도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이들은 종종 남의 애인을 가로채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는 ‘양다리’의 달인들이다. 어떤 바람둥이는 ‘애인을 자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양다리는 절대 안 한다’며 요상한 상도덕(?)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퇴폐가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도 매력적인 이성이 나타나면 설령 애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로채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들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이고, 여성들은 왜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생물학자들이 몇 년 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태계에선 오히려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는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까지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진다
예를 들면,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서식하는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guppy)는 강물의 색깔에 따라 몸의 빛깔을 바꾼다. 암컷은 대개 밝은 오렌지 색깔을 지닌 수컷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몸 빛깔이 밝은 수컷일수록 암컷을 보호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다른 암컷이 덜 밝은 빛깔의 수컷을 선택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면, 덩달아서 그런 수컷을 짝으로 고르는 경향이 관찰됐다. 즉, 거피들은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는 수컷에 관심을 보이고 그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방 행동은 다른 암컷들의 판단을 활용해 자신에게 적합한 짝짓기 상대를 신속히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나름의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취향이 제각각이라서 이성을 고를 때 다른 동성의 선택 기준을 감안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도 거피처럼 남들이 선호하는 이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한 집단 안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그중 가장 능력 있는 이성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들도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와 기꺼이 사귀는 것도 같은 이유다(‘바람둥이는 절대 싫다’고 이성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면 바로 뿌리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플레이보이나 팜므파탈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배웠거나 길들여진 것일까? 타고난 성향도 있을 수 있다.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람기 성향까지 타고났다면, 그는 플레이보이나 팜므파탈의 길로 들어설 확률이 높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과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들쥐 ‘불스’에 대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불스는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보지만, 산에 사는 불스는 새끼를 낳아도 수컷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해 떠난다.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이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당신 옆에 사람이 그 사람일지도…
몇 년 전 한국방송 팀의 의뢰를 받아,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의 뇌를 찍어 이성에 대한 반응을 살핀 적이 있었다. 제작진과 우리 연구실에서는 평소 바람기가 많다고 고민하는 지원자 6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실험을 실시했다. 결혼한 배우자나 사랑에 빠진 애인의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며 뇌 활성화 차이를 알아본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내를 볼 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쾌락의 중추가 처음 보는 이성의 사진이나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앞에서 마구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들의 뇌에선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마구 분비됐다. 그들은 사진을 보고 난 뒤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그것은 거의 일종의 목표의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고. 당신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선 다음 번에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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