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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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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모션의 재미

등록 2008-06-20 00:00 수정 2020-05-03 04:25

순간포착 ‘유로 2008’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꼭 축구를 좋아해야 축구 중계를 보는 건 아니다. 축구 규칙도, 축구 선수 이름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축구를 본다. 그것도 새벽에. ‘유로 2008’ 무대에서 네덜란드가 세 골을 넣으며 활약하는 것도 봤고, 포르투갈 호날두가 골을 넣고 윙크하는 것도 봤다. 나 같은 사람이 축구를 보는 이유는, 경기 자체 말고도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결정적인 찬스 때마다 그 장면을 천천히 다시 돌려주는 슬로모션 시간이다. 선수들 4~5명이 뒤엉켜 공을 향해 다리를 아등바등 내딛는 모습, 선수들의 다리 근육이 마치 고대 그리스 조각상처럼 움직이는 모습, 개그 프로그램 부럽지 않게 어이없이 넘어지며 몸개그 작렬하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보고 있노라면 잠이 싹 달아난다. 멋있어서? 아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극적인 순간, 감정을 고조시키는 대신 웃음을 주는 슬로모션의 최고봉은 영화 에서 저우싱츠(주성치)가 저우룬파(주윤발)를 흉내내며 걸을 때 자체 슬로모션 효과를 걸어 남들보다 2배 느리게 움직이던 ‘인간 슬로모션’ 장면이다.

최근 MTV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그램을 보다가 ‘인간 슬로모션’에 대해 또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뮤직비디오에서 가수들이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촬영할 때는 노래를 2배속으로 빠르게 틀어놓고 거기에 맞춰 립싱크를 한다는 것. 머라이어 캐리가 노래를 빠르게 틀어놓고 조잘조잘 애쓰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적인 디바도 ‘인간 슬로모션’ 앞에서는 별수 없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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