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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소년병의 처절한 성장기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2년여 실전을 경험한 소년의 ‘충격과 공포’의 기록 </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전쟁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누구도 참극과 유혈을 피해갈 수 없다. 전쟁터에서 어린이가 어린이일 수 없는 이유다. 때론 피해자로, 때론 가해자로, 어린이들도 전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현재 전세계 20여 개국에서 줄잡아 20만~30만 명의 어린이들이 ‘소년병’으로 전선을 떠돌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스마일 베아 지음·북스코프 펴냄)은 피난길에 소년병으로 징집돼, 2년여 동안 실전을 경험한 지은이가 겪은 ‘충격과 공포’의 기록이다.

증언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시골마을 출신인 지은이가 가족과 헤어지게 된 사연에서 출발한다. 이웃 마을에서 열린 장기자랑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길을 나선 12살의 그는 고향마을이 반군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 가족들은 이미 폐허가 된 집을 등진 뒤다. 그렇게 시작한 피난길, 그나마 곁을 지켜주던 형과는 아비귀환의 탈출길에서 헤어지고 만다.

길에서 만난 소년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지만,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군의 거센 공세에 직면한 정부군은 반군과 마찬가지로 피난을 나온 소년들에게 총을 들게 한 게다. 첫 전투에 나가던 날을 지은이는 “내 평생 어딘가로 떠나면서 그날만큼 두려움에 질려본 적이 없다”며 “눈물이 차올랐지만 애써 감추며 조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고 썼다.

전투는 격렬했고, 현실은 참혹했다. 잘려나간 팔다리와 산산이 부서진 두개골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몰려드는 두려움은 코카인과 ‘하얀 캡슐’로 달랬다. 마약을 섞어 먹으면 힘이 용솟음치고 ‘야수처럼’ 사나워지는 걸 경험했다. 차츰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워졌다.

전쟁터에서 총은 ‘힘의 원천’이었고, ‘필요한 것은 뭐든’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붙잡은 포로는 “내 부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반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의 목을 베는 것에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따라야 할 유일한 삶의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면서 지은이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처럼 ‘재활’의 기회를 얻었다. 유네스코가 운영하는 재활센터로 옮겨가던 날, 지은이는 “아직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분노와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고 적었다. 재활센터에 도착한 첫날 은퇴한 소년병들이 정부군과 반군으로 나눠 ‘전투’를 벌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지은이는 “환경이 바뀐다고 그 즉시 우리가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 뻔한 일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날 20여 분의 싸움으로 6명이 숨졌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군인’으로 ‘우러러봐주기’를 바랐지만, 재활센터 직원들은 한결같은 말만 반복했다. 소년병들이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어린아이일 뿐이었어.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새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약 금단 증상에 허덕이며, 힘겹게 재활 기간을 버텨냈다. 기적처럼 삼촌을 만나 새 가정을 찾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이윽고 반군연합이 수도 프리타운을 장악했다. 다시 번지는 유혈 속에 삼촌이 느닷없이 숨을 거두자, 지은이는 “소중한 것들은 항상 내 곁을 떠났다”고 울부짖는다. 다시 피난길에 나선 지은이가 천신만고 끝에 국경 너머 이웃 나라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 도착하고서야, 레게와 힙합을 좋아하던 한 소년의 처절한 성장기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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