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줄레조 등 프랑스 아시아 연구자들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주말을 앞둔 신문에는 호텔이 주최하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옹기종기 실린다. 와인 파티도 있고 이탈리아 요리사를 불러서 하는 강좌도 있다. 가난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OL(직장 여성)의 로망은 호텔 뷔페다. 한창 좋을 나이인 옆 자리 동료에게는 호텔에서 하는 결혼 청첩장이 날아든다(좋겠다, 호텔 음식 먹겠네…). TV 드라마에서 그럴싸한 맞선 자리가 있을라치면 차려입은 주인공이 찾아가는 곳은 호텔 커피숍이다. 이름을 알리면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칠판을 들고 맑은 종소리를 울리며 자리를 돌아다닌다. 주말이나 특별한 연말을 위한 ‘패키지’도 있다. 이제 호텔은 ‘묵는 곳’이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만남을 갖고 특별한 문화를 ‘구경’하는 곳이다. 이런 심상한 풍경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어 보였나 보다. (후마니타스 펴냄)은 이런 풍경에 ‘아시아적’ 요소들이 결집돼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저자들은 프랑스인이다. 을 통해서 주거지의 문화사적 의미를 정밀하게 분석해낸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호텔을 훑었고, 티에르 상쥐앙, 제프리 W. 코디, 니콜라 피에베, 프랑수아즈 제드, 실비 기샤르 앙기스, 조루주 카스가 홍콩·일본·중국의 호텔들을 살폈다. 프랑스인 저자들의 분석 대상이 ‘고급호텔’이 된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은 공항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을 것이며 아시아 연구자이자 사회학자인 그들에게 서양과 내국인이 어울려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은 기특한 소재로 던져졌을 터.
한국에서 호텔은 맨 처음 유럽 호텔 유형 가운데 하나인 ‘철도호텔’이었다. 부산, 평양, 신의주 기차역과 호텔은 한 건물 안에 둥지를 틀었다. 호화 숙박업소로는 제일 먼저 등장한 조선호텔(1914) 역시 철도호텔로 지어졌다. 운영하는 곳은 철도국이고, 철도국은 관련 직원을 연수차 유럽에 파견했다. 1938년 봄에 개관한 반도호텔은 이름부터 홍콩 ‘페닌슐라호텔’을 연상시킨다. 조선호텔에 들렀다가 쫓겨난 일본인이 ‘홧김’에 바로 옆의 땅을 사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 두 호텔은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사업의 일환으로 호텔을 짓기 시작하던 박정희 시대 전까지 단 두 개의 ‘호화 호텔’이었다. 한국전쟁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딴 워커힐호텔이 1963년 지어지면서 미국식의 ‘리조트 호텔’ 유형이 생겨난다. 조선호텔도 미국식으로 리모델링한다. 198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그 최전선에 고급호텔이 들어선다. 강남·북의 개발 차는, 1988년 이후 강북에 지어진 고급호텔이 스위스그랜드호텔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강남과 강북의 호텔은 매출 구조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인 고객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모두 강남에 있다. 여기에 유럽 호텔과의 차이점도 나타난다. 유럽과 달리 한국의 호텔에서는 리셉션, 식음, 스포츠클럽, 수영장, 사우나 같은 각종 서비스를 현지 고객 유인책으로 사용한다. 모든 고급호텔은 한국인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1999년 25만원에 달하는 회원카드를 발급한다. 이 고객들은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것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명성의 기호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호텔에서 ‘한국적’인 것은 장사가 안 된다. 1961년 관광진흥법은 모든 호텔에 온돌방 설치를 강제했는데 1년에 한 달 정도 예약된다고 한다. 이 호텔들은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유행의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리모델링한다. 1980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진 것을 참조로 하여 발레리는 결론을 내린다.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서구와 접촉할 수 있는 장소이자 하나의 소우주로서의 고급호텔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연출해 무대에 올릴 특권적 공간을 한국 중산층에게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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