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깡촌마을 소년도 자란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더럽고 웃긴 이야기 하나. 믿거나 말거나, 시베리아에 가서 오줌을 누면 그대로 얼어 빛나는 무지개 다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안나푸르나 토롱 라 고개 해발 5415m, 누군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쁜 마음에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감사 기도를 중얼거리니 그대로 입이 땅에 붙어버렸다. 잡아 떼려니 얼굴 전체가 떨어질 듯한데, 고향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묘책을 짜낸다. 컵에 오줌을 누어 입술에 부은 것. 그의 오줌은 무지개가 되기 전에 입을 녹였다. 다행이다. 그가 풀린 입을 놀려 ‘더럽고도 우습고도 무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미카엘 니에미 지음, 정지현 옮김, 낭기열라 펴냄, 9500원)는 스웨덴 북부의 깡촌마을 토네달렌의 소년 마티의 성장기다. 마티는 1959년생인 작가와 겹쳐진다. 토네달렌에서는 지척에 있는 핀란드의 방언인 ‘메엔키엘리’를 사용하는데 스웨덴 정부는 러시아 안보 정책으로 스웨덴어 교육을 강권했으니 이 지역은 좋게 말해 ‘이중언어’ 환경이다. 아이들은 “키토스, 탁” 두 언어를 함께 섞어 ‘고맙다’라고 말한다. 숲 속에 사는 원주민 사미족,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더 어지러워진 정치 상황, 그 지역에서 부흥한 종교 레스타디우스파까지,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더 복잡하다. 그들 성격은 불같아서 결혼식(주로 ‘국제결혼’)이 벌어질라치면 두 고집이 만나서는 불통하니 술을 마셔도 사우나를 들어가더라도 끝장 볼 때까지 일을 치른다.
마티는 집안에서 노동자 계급 출신에 주로 핀란드어를 쓰고 잘못하면 부모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입학한다. 스웨덴에서 파견된 선생은 그들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성적은 전국 최하다. 마티 옆에는 ‘코딱지 따먹기’를 통해 알게 된 레스타디우스파 가정의 니일라가 있다. 집 옆으로 신작로가 뚫리고 마티는 ‘엘비스’의 노래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니일라 할머니의 장례식을 맞아 온 미국인 친척은 ‘커즌’에게 ‘프레젠트’로 ‘비틀스’를 준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크납수’(사내답지 못함)한 일이었다(심지어 음악 시간에도 입만 벙긋거린다). 하지만 일단 음악을 시작하니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자위를 시작했을 때처럼. 마티는 니일라를 끌어들여 학교에서 막간 공연을 한다. ‘홈메이드 잉글리시’로 “저슬렌미 힐써멉댓 롸캔놀 무직~” 아이들은 오른손에 엄지만 남은 그레게르 선생님에게 박자를 배운다. “손가락 네 개가 없지? 이때는 조용히 있는 거야. 그러고 나서 엄지에 오면 음악이 시작되는 거지?” ‘레이스 장식’을 더하듯 기타를 혼자 익힌 홀게리가 들어오고 ‘술마시기 지역 선수권대회’ 우승자를 드러머로 영입한다. 그렇게 밴드는 완성되고 그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사춘기 아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충고한다. 정신병원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넘치니, “책을 읽지 말아라”. 네팔에서 죽지 않았기에 ‘깡촌’의 이야기는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신작로를 닦는 아저씨와 마티의 대화. “세상이 얼마나 커요?” “엄청나게 크지.” “하지만 어디선가는 틀림없이 끝나겠죠?” “중국에서.”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독자와 저 멀리 복잡한 스웨덴 소년 간에 가느다란 선이 이어진다(아참, 그 옆에는 박노자 선생님도 계셨지).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전세계로 번역됐기에 메엔키엘리는 스웨덴어-독어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노래는 신작로를 타고 오는데 이야기는 참 느리게 온다. 그나마 책이 없으면 무슨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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