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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인터뷰에 취한 여자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펴낸 김경씨의 독특한 매력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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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톡톡 튀지도, 장엄하지도 않은 김경의 언어가 낯설다. 그의 언어는 뭐랄까, 감수성이 풍만한 바다 위에 찰랑찰랑 떠 있는 것 같다. 그가 배고프다고 써도, 그 배고픔이 로맨틱해 보인다. 그의 언어를 나는 따라할 수도, 따라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이 질투심 나는 ‘선수’가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생각의나무 펴냄)라는 인터뷰집을 펴냈다.

이 책에는 김훈, DJ DOC, 강혜정, 김형태, 아라키 노부요시, 신동엽, 이우일, 주성치, 크라잉넛, 싸이, 후보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까지, 우리 시대의 ‘문제적 인물’들이 가득하다. 물론 이것은 김경씨의 ‘선호 인물 유형’과도 통한다. “저는 날라리 문제아 꼴통들을 선호합니다. 그들에겐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같은 데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혹시 그들의 남성적 매력이 김경씨의 주목을 받는 걸까? “물론 그렇습니다(웃음). 저는 인간적인 매력이나 성적인 긴장감이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좋아합니다.”

김경씨는 인터뷰 대상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취해 있다. 김훈씨의 산문집을 읽으며 ‘살아 있는 것들의 눈물겨움’에 그냥 울고 싶어지기도 하고, 백현진의 노래를 듣고 술에 취해 뻗기도 한다. 그래서 대책 없이 ‘오버’할 때도 있다. 김훈씨가 “서울 경에 맑은 숙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어떤 대의명분보다 개별적인 인간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접근법”을 떠올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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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양념’이 풍부한 김경씨의 인터뷰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를 “그게 다”라고 얕봐서는 안 된다. “보통 4쪽짜리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최소 100페이지 이상의 자료를 읽고 가는데 그건 인터뷰어의 기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을 많이 들일수록 인터뷰이에게 애정이 생깁니다.” 김경씨의 인터뷰에는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직관이 이따금 번뜩인다. 그것은 ‘문제적 인물’들의 내면을 꿰뚫는다. 그렇게 인터뷰어 김경은 “뻘처럼 별 볼일 없고, 뻘처럼 사람 발목을 잡아끄는” 함민복 시인의 삶과 언어를, 주현의 자존심과 고집을 발견한다.

끝으로 김경씨를 어설프게 흉내내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데스크의 지령 때문에 ‘꼰대’ 스타일의 저명 인사를 인터뷰합니다. 지겨운 말만 나열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 인사가 자기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답변은 이랬다. “자기라니요? 저 말이세요? 어땠냐고요? 그 질문은 마치 남자들이 침대 위에서 즐겨 사용하는 질문 같은데… 글쎄요. 맛을 봐야 알겠는데요. 하지만 선생님은 별로 제 취향이 아니라서 대답하기 어렵겠는데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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