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혁명가 2 - 태평천국]
<font color="darkblue">천왕 홍수전의 자살로 마감된 태평천국의 꿈… 기독교로 무장한 농민군의 폭발력이 중국을 흔들다 </font>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상제(야훼 하나님)를 경배하는 사람은 도망가지 않는다. 모두 함께 밥을 먹자!”
19세기 후반 이민족과 유교 사대부 계급의 오랜 압제와 착취에 시달려온 중국 농민들이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치에 매혹돼 무장봉기에 돌입한다. 자신들의 나라를 ‘태평천국’(太平天國), 스스로를 ‘성스러운 병사’(성병·聖兵)로 부르는 등 독특한 기독교적 사상과 구호로 무장한 농민군은 엄청난 열정과 폭발력으로 중국 전역을 14년 동안 뒤흔들었다. ‘태평천국운동’으로 기록된 이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16개성 600여 도시가 파괴되고 모두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평천국은 비록 부패한 청나라 조정과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중국을 직접적으로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평등과 해방의 슬로건을 현대 중국에 승계하는 데는 성공한다.
홍수전, 두번의 과거에 낙방한 뒤…
태평천국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홍수전이 꼽힌다. 청나라 말기 비판적 지식인인 그는 농민과 숯굽는 사람, 하급노동자, 광부, 난민 등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체제 변혁의 이데올로기와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로 이 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역사가 전하는 그의 일대기는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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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전은 1813년 광동성 화현에서 중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4살 때 광주에 나가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 그 직후 중국에 진출해 있던 개신교도에게서 전도용 팸플릿인 <권세양언>(勸世良言)을 얻어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듬해 다시 두 번째 과거에서도 낙방한 뒤 그는 열병을 앓는다. 이때 40여일을 병상에 누워 지내는 동안 그는 기독교적 이미지와 발상으로 가득 찬 ‘환상’(visions)을 보았다. 여기서 환상은 기독교적인 표현으로서 일종의 꿈 또는 예언적 환상을 가리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불만스러운 유교적 현세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상체계로서 기독교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 이론을 강화해나간다. 그 결과 “세계 만물을 창조한 존재인 야훼(여호와 하나님)를 경배하고, 요마를 격멸해야 한다” “하늘의 상제는 야훼, 그 큰아들은 그리스도, 그 둘째 아들은 자신 홍수전이다”는 등의 이론체계가 세워진다. 동시에 그는 만주족의 청나라를 요마로 규정하는 등 반청의 기치도 선명히 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1844년 야훼를 숭배하는 모임인 상제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홍수전은 아편전쟁의 패전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는 강남 지역에서 그 세력을 크게 확대해나간다.
드디어 홍수전은 1850년 광서성에서 상제교 신도들에게 봉기를 명령하는 ‘금전기의’(金田起義)을 발의한다. (기의란 의로운 봉기라고 할 수 있다. 금전은 봉기를 위해 모이라고 지정한 마을의 이름이다.) 상제회는 당시 홍수전식의 기독교적 교의를 덧붙여 종교적·사회혁명적 비밀결사로 발전한 상태였다. 이 발의에 대해 2만명이 호응해 봉기에 돌입한다. 봉기군은 엄정한 규율과 높은 사기 그리고 “죽은 뒤 혼은 천당에 올라 영원히 천상에서 복을 누린다”는 ‘천당론’ 등으로 종래의 농민봉기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보인다. 나중에는 봉기군의 전투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시 이런 기독교적 천년왕국이 지상에서 현세에 구현된다는 내용의 ‘소천당론’(小天堂論)을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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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851년 영안주성을 함락시킨 봉기군은 ‘태평천국’이라는 국호를 세우고 ‘천평’(天平)이라는 연호를 채택한다. 홍수전은 ‘천왕’(天王)이 된다. (야훼 하나님을 황제 격인 천국의 상제로 상정했기에 지상에서는 다시 황제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왕으로 된 것이다.) 태평천국군은 이듬해인 1852년 북상해 당시 중원에서 가장 큰 도시인 무한을 점령하고, 1853년 2월 중국의 가장 많은 역대 왕조가 수도를 삼는 등 북경과 쌍벽을 이루는 왕도인 남경까지 점령한다.
지도자들의 내분에 휩싸이다
이 무렵 태평천국군은 병력 백수십만에 이르는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팽창한다. 인근 진강과 양주까지 점령한 태평천국군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일부 병력을 출동시켜 ‘요마세력’인 청나라의 수도 북경을 향해 진격시키기는 했으나 주력군대는 남경에 그대로 머물고 장고에 들어간다. 결국 홍수전 등 지도부는 강남 일대를 평정하면서 내실을 다진다는 명목으로 소극론으로 기울어간다. 이런 소극론은 불과 4만 병력으로 북경을 향해 진격한 북벌군이 연전연승하면서 북경 100km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뒷심 부족으로 패퇴하고 마는 사태로 이어진다. 홍수전 등 지도부는 남경을 ‘천경’(天京)으로 삼고 북경의 청나라 조정과 병립하는 형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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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태평천국쪽은 지도부 내분에 휩싸인다. 전쟁의 확대에 따라 새로이 정치와 군사 양대 권력을 장악하면서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한 가난한 농민 출신의 동왕 양수청과 다른 지도부 사이의 알력은 결국 북왕 위창휘의 양수청 살해와 그 일가족 학살을 불러왔다. (태평천국은 당시 으뜸인 천왕 홍수전 밑에 지도자 6왕을 두었다.) 다시 북왕 위창휘는 익왕 석달개와 반목하다가 천왕 홍수전에게 제거된다. 익왕은 천왕 홍수전이 홍씨 일가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자 태평천국에서 이탈해나간다. 태평천국의 소극적 전략과 내분을 틈타 그동안 밀리기만 하던 청나라쪽은 반격에 나선다. 점령지를 지속적으로 되찾으면서 전세를 만회해나간다. 나아가 태평천국군은 양자강 지역의 소주·항주를 점령하면서 이 지역에 진출한 서구 제국주의와도 직접 충돌하게 된다. 이에 대해 영국·프랑스 등 서구세력은 북경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청조를 도와 태평천국군 공격에 직접 가담한다. 전세는 급격하게 태평천국쪽에 불리해진다. 이전에 양자강 일대를 점령하면서 청나라군을 남과 북으로 양단했던 태평천국군은 이제 도리어 자신의 군대가 식량수송로를 차단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내몰린다. 결국 1864년 이홍장, 증국번 등 청나라 군대와 고든 등 외국군이 천경을 포위 압박해오자 홍수전은 자살한다.
지배계급의 완전 전복을 시도
태평천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중국 역사상 최대의 농민운동: 한편으로 태평천국운동은 과거 농민반란, 농민봉기의 전통을 계승하는 성격을 띤다. 이 점에서 보더라도 태평천국은 그 규모와 파괴력, 인명피해 규모, 국제전적 성격으로 단연 손꼽힌다. 특히 청조 중엽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태평천국운동 시기 인구는 4억5천만명을 넘었다. 이런 실정에서 인적 규모를 나타내는 수치는 당연히 기록적일 수밖에 없다.
(2) 지배계급의 완전 전복을 시도한 본격혁명의 성격: 그러나 태평천국은 종래의 농민반란이나 봉기가 안고 있던 역성혁명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었다. 주도세력의 명확한 계급성, 평등주의적 이상을 천명한 천조전무제도 등은 근본주의적 혁명성을 보여준다. 특히 태평천국의 건국지표라 할 수 있는 천조전무제도는 지주의 토지 몰수와 토지의 균분, 일정액 이상 소득의 몰수와 평등 분배 등까지 규정하고 있다.
(3) 중국화된 기독교 사상체계의 과감한 수립: 홍수전은 수천년 동안 중국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철저히 파괴하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파악했다. 중국의 가치체계를 급진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외부의 전혀 다른 이론체계, 사상체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근거를 전혀 다른 사유체계인 기독교적 교의에서 발견한 뒤 그의 이론작업은 더욱 근본주의적 변혁성을 갖추게 됐다.
(4) 중국 공산혁명으로의 승계: 태평천국은 현대 중국 공산혁명에 사상적·전략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51년 태평천국 100주년 기념 사설에서 “선진계급의 지도가 없는 구식 농민혁명의 최고형태”라고 규정했다. 비록 현대적 의미의 노동자 계급의 선진적인 사상과 지도라는 측면을 충족시킬 수 없었지만, 당대의 조건에서 볼 때 최고의 바람직한 혁명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태평천국의 성격은 모택동의 신민주주의론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5) 여성해방의 맹아를 선보임: 태평천국 치하에서 구시대와 비교해 가장 혁명적으로 바뀐 영역으로 여성의 지위 변화를 꼽는 견해가 나온다. 특히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봉건적 잔재인 전족의 폐지라든가, 과감한 여성관리의 채용 등의 조치도 주목할 만하다. 또 천경 등 태평천국 지배 지역에서 여성들은 청조 지배 지역의 다른 도시와 달리 말을 타고 활보하는 등 해방공간적 상황을 실현했다. 여성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외국인에 대한 스스럼없는 태도 등을 기록한 외국인의 증언도 있다. 이런 여성해방적 성격은 이후 현대 공산혁명 이후의 여권 향상과 적지 않은 연관성을 지닌다.
(6) 초기 혁명의 진정성 상실: 태평천국군은 남경 점령 직후 병력만 백수십만명으로 확대된 전성기 상황에서 중대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총력으로 북경을 점령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특히 4만명의 소수 병력만 파견했던 북벌군이 북경 인근까지 승리하면서 육박해갔던 점을 고려하면 주력군을 동원한 시의적절한 총력전을 펼쳤더라면 북경을 어렵지 않게 점령하고 새로운 국면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을 늦추는 전략적 실수가 결국 청나라 조정에 반격을 위한 시간적·물질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전세는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기울어갔던 것이다. 나아가 남경에 그대로 머물면서 종래의 역성혁명 세력과 같은 타락상을 보였다는 설도 주목할 만하다.
기독교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현대 중국
(7) 치명상이 된 지도부의 내분: 초기 태평천국은 천왕 홍수전 밑에 6명의 강력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각각 왕으로 포진한 채 서로 협조하고 상승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내분에 따른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3명이 죽거나 이탈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혁명이 성공하기 어렵다.
150년 전 중국 대륙에서는 맨 밑바닥에서 억압받는 가난한 민중들이 홍수전의 주장에 호응해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태평천국의 봉기에 열렬하게 합류했다. 비록 홍수전식으로 각색되거나 변형되기는 했어도 대단히 기독교적인 교의에 그토록 많은 하층민들이 호응한 셈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은 어떠한가? 태평천국의 혁명이론적 자양분만 계승되고 기독교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졌다. 뭔가 이상하고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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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모세-그리스도-홍수전?</font>
홍수전의 기독교적 이론작업은 24살 때 열병 기간 중의 ‘환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환상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1) 천상계를 방문해서 흑의를 입은 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세계 만물을 창조한 나를 경배하라. 귀마(鬼魔)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요괴를 죽이는 검과 인장을 주었다.
(2) 홍수전은 중년의 사람과 함께 사악한 신을 찾아 베어서 멸망시켰다. 그는 이 중년의 사람을 큰형이라고 불렀다. 흑의 노인은 공자를 힐책했다. 공자는 부끄러워하며 죄를 참회했다.
(3) 환상을 보는 동안 요마는 새나 사자 등으로 변신하면서 그에게 덤볐지만, 노인에게서 받은 인장으로 막자 물러났다.
여기서 흑의 노인은 여호와 하나님, 중년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요마는 사탄, 인수는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태평천국의 공식 역사서인 <태평천일>은 이런 식으로 성경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당초 천부상주황상제는 6일 만에 천지, 산해(산과 바다), 인물을 조성해 7일째에 완공했다. 상고의 때 온 천하는 모두 황상제의 은전에 감사할 줄 알고 있었다. 노아 때에 이르러 세인(세상 사람)은 사마에 유혹돼 세계를 더럽혔다. 황상제는 대로해 40일 낮과 40일 밤의 큰비를 내렸고, 홍수는 세상 사람을 침몰시켜 거의 없애버렸다. …황상제는 대로해 내려와 이스라엘을 구해 이집트국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게 하고… 황상제는 십관천조(十款天條·십계명)를 지었다. …이때 다행히도 구세주 천형 기독이 있었다. …황상제의 태자인데 강생해 몸을 버려 세상 사람을 대신해 속죄하기를 원했다. …태평진주(홍수전)는 또한 천부, 천형의 막대한 은애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 주의 나이 25살 때인 천유년(1837년) 3월 초하루 자시에 무수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런 식으로 노아-모세-그리스도-홍수전이라는 구세주의 계보를 만들고 있다.
한편 홍수전은 국정지표 <천조전무제도>에서 ‘예배’조를 두어 ‘관리와 인민은 예배일마다 성경강독을 듣고 진심으로 천부를 경배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font></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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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 오프 항해지도]</font>
▶ 중고생
-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 진순신/예담
▶▶ 대학생 이상
- <the taiping rebellion> Ian Heath/Osprey Military(사진)
<중국의 천년왕국> 미이시 젠키치/고려원(옛날책)
<캠브리지 중국사> 패트리샤 버클리/시공사
<중국통사-하권> 중국 광명일보 출판사(중국책)
<채도판 중국통사> 해연출판사(중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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