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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술의 역사] 신의 축복인가 악마의 유혹인가

등록 2005-01-07 00:00 수정 2020-05-03 04:23

[오귀환의 사기열전 | 화장술의 역사]

<font color="darkblue">아름다움을 향한 여성들의 욕망, 이스라엘에서 이집트·그리스까지 화장술 문화의 변천사</font>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주께서 그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화환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반지와 코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구약성서 이사야서 3장 18~23절)

2700년전, 여성들은 무엇으로 꾸몄는가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욕망은 신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쓴 이 이사야서는 아름다움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 절절하게 확인시키고 있다. 일단 이런 구절을 보고 난 뒤 이사야가 기원전 약 740년 무렵에 활동했던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뭔가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2700여년 전 여성들이 자신의 미모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꾸몄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려 21가지의 패션 관련 품목이 여기 등장한다. 그뿐인가. 그 다음 절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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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이사야서 3장 24절)

이스라엘 여성들은 당시 기본적으로 향을 발산하는 화장품을 가지고 다녔으며, 머리 손질에 깊은 공을 들였으며, 미모를 위해서 엄청난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번역은 ‘숱한 머리털’로 했지만, 영어 번역으로는 ‘well-dressed hair’로 돼 있다. ‘고운 얼굴’도 영어 번역은 ‘beauty’이다. 더군다나 이사야서에 나타나고 있는 ‘장식한 발목 고리’로부터 ‘너울’까지 21가지 품목이 영어식으로는 모두 단수 아닌 복수로 돼 있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 시대 여성들은 현대인에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여 화장에 힘쓰고 있었던 것이다.

성서와 관련된 역사서적에 따르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기술인 화장술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의 위서(僞書)로 분류되는 기원전 2세기의 <에녹서>(the Book of Enoch)는 천사 아자젤이 인간들에게 “여러 가지 금속과 그 금속을 다루는 방법, 팔찌와 장신구, 안티몬으로 눈 주위를 칠하고 눈꺼풀을 분으로 꾸미는 법, 진기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온갖 염료를 전해주었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유대교에 따르면 이 아자젤이라는 존재는 속죄의 날 의식 때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의 길을 떠나는 염소를 받아들이는 ‘사막의 악마’로 나타난다. 따라서 아자젤은 악마적인 존재로 비정되고, 그런 존재가 인간의 여성에게 가르쳐준 것들도 악마적인 성격으로 비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악마적인 것일까?

클레오파트라는 ‘화장미인’일까

이스라엘보다 훨씬 여권이 강력하고, 문명이 발달했던 이집트에서는 화장술, 미용술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활용됐다. 오히려 그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이 누린 화장술은 더욱 고급화하고, 독점화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상황에 따라서는 화장 방법이 대단히 과학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도 확인되고 있다. 물론 이런 사회에서는 화장술이 단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성들도 함께 누리고 즐기던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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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보자. 이집트인들은 <에녹서>의 아자젤이 인간에게 전수했다는 안티몬 화장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안티몬과 미묵(眉墨)을 눈에 칠하고 있다! 이건 과학적 근거도 있다. 사막지대인 이집트에서 살아가려면 건조해지기 쉬운 눈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 안티몬과 미묵이 끊임없이 눈물샘을 자극해 눈의 건조를 막아준다. 각막염이나 결막염 등 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이집트 신으로서 매의 형태로 현세에 나타난 호루스의 눈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나아가 땀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향과 테레빈유를 사용했다. (이 유향이 기독교의 신약성서에서 동방박사가 예수의 탄생 때 가지고 온 3가지 예물 황금, 유향, 몰약 가운데 하나이다.) 도미니크 파케는 이집트인의 화장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집트인의 몸단장은 향료를 푼 욕조에서 시작됐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욕조에서 이집트의 호수에서 구한 ‘나트론’이라는 나일강의 진흙으로 몸을 문질렀다. 그 다음에는 ‘수아부’라는 표백토와 재를 섞은 반죽으로 각질을 제거하고 향유로 마사지를 했다. 몸은 금빛을 띤 황토색 기름을 발라 윤기를 띠도록 했고, 상반신과 관자놀이의 정맥들은 그 반짝이는 금빛과 차가운 대조를 이루는 푸른빛으로 부각시켰다. ‘호소하는 듯한 눈을 만드는’ 검은 미묵을 칠한 눈은 물고기 형태로 늘여 그렸고, 눈꺼풀에는 녹색 공작석, 터키옥, 테라코타, 구리의 검은 산화물, 숯 등을 빻아 강한 색조를 입혔다. 이 기이한 눈은 길게 늘여 검게 칠한 눈썹으로 완성됐다. 검게 그려넣거나 뽑아낸 속눈썹, 장밋빛 볼, 분홍이나 양홍빛 입술 등은 푸르스름한 가발을 쓴 성스러운 얼굴에 무희의 얼굴과 같은 화려한 광채를 주었다. 손질된 손톱과 발톱에는 적갈색 헤나 염료를 입혔다. 이 염료는 사막의 먼지로부터 손톱과 발톱을 보호했으며, 상징적 의미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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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성직자 계층이 독점하던 이런 화장술은 점차 역사가 흐름에 따라 귀족계급에게도 확대된다. 성직자들이 사용하던 화장술의 비결을 귀족들이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집트의 화장술이 이처럼 고도화했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도 그 인위적 성격을 비판받곤 했다. 이른바 ‘화장미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어느 정도 맞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도 “그의 미모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으며, 타고난 미모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정도는 아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도 당시 이집트 최고의 도시(이집트 최고라면 그대로 세계 최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알렉산드리아의 여인들처럼 향수와 장신구, 보석 등을 이용했다. 알렉산드리아 여인들은 화장에 능했다. 미용술, 복잡한 머리 모양, 진홍빛 드레스 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당대의 남성 영웅들을 사로잡았던 매력은 더 고차원적이다. 말할 때 저절로 드러나는 우아함, 부드러움, 친절함 그리고 10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놀라운 지적 능력…. 일단 그와 말을 나눠본 사람이라면 그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스파르타, 화장품을 근절하다

이집트와 경쟁했던 그리스와 로마의 화장술은 이집트보다 훨씬 억압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집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였다는 점도 이런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군국주의적인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아예 화장품을 근절시키는 조치까지 취해졌다. 스파르타보다는 더 개방적이던 아테네에서는 그래도 조금 숨을 돌릴 여지는 있었다. 비록 결혼한 여성은 규방에만 갇혀 있었지만, 동양(여기서의 동양은 중동지역을 말한다)의 화장품이 꾸준히 그 규방으로 흘러들어갔다. 밤에는 ‘남편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약간의 화장이 허용되기도 했다. 나중에 그리스 문명이 본격적으로 이집트 문명 등과 혼효돼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우면서 화장술은 더 활발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동양에서 유래한 짙은 화장이 유행하고 이른바 ‘백연 편집증’이라는 증후군이 지중해 일대를 휩쓸게 된다. 얼굴을 백연, 석고, 백묵 등으로 진하게 화장하는 유행이 휩쓸더니 다시 그 얼굴에 푸코스 아르칸나, 밀토스 같은 식물성이나 광물성 재료로 붉게 액센트를 주는 방식이 히트를 쳤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리스 시대의 아름다움은 이집트보다 훨씬 억압적이었다. 나아가 아름다움을 조절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화장술보다는 운동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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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도 그리스적인 전통을 많이 답습했다. 그러나 제국이 풍요로워지면서 화장술도 점차 발달하게 된다. 가슴 팔 겨드랑이 다리 입술 뒤 코털 등을 본격적으로 제거하는 게 로마 귀족부인들의 기본적인 방식이었으며, 코르셋을 사용해 몸매를 감추기 시작한 것도 이 시대부터다.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을 안티몬이나 사프란으로 칠하고, 다시 볼을 아르칸나나 연단으로 붉게 칠하는 요란한 화장이 로마에서 유행했다. 로마의 최전성기를 지난 뒤부터는 오늘날 미국을 연상시키는 풍조가 나타난다. 비만에 대한 강박관념이 그것이다. 테렌티우스에 따르면 당시 여성들은 “운동선수처럼 보일까봐 두려워 음식의 양을 줄였다”고 한다.

감추기와 냄새 없애기에 매달린 로마인들

이와 함께 로마인들은 감추기와 냄새 없애기에도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이 시대에 이르면 대하수도의 오염이 심각한 상황으로 들어가고, 로마식 식생활의 폐해가 장기적으로 축적해 점차 노골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저마다 화장수와 향유를 발라 유해오염 물질이 몸에 접촉하는 것에 대비했으며, 피부병이나 구취·반점 등을 감추고 없애는 데 거의 신경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게다가 백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얼굴빛이 변색되고 치아가 검어지고 신경이 둔화되는 증상까지 확산됐다. 제국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화장술을 억압하거나 왜곡해왔다. 그 뒤 현대에 들어와 다시 이집트적인 자유분방한 화장술 문화와 로마 말기의 과도한 화장술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미래의 여성들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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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여인들, 아이섀도를 배우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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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도 화장술은 발달했지만, 외형적인 면에서는 서양보다는 상대적으로 뒤지거나 전혀 다른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중국 역사에서 가장 국제주의적인 대제국이었던 당나라만 보더라도 당시 화장술의 발전이 서양에 미치지 못한다. 시인 원진의 법곡(<원씨장경집> 권24)을 보자.
“여인은 호부(胡婦)가 되려고 호장(胡?)을 배우고
기생은 호음(胡音)을 권하고 호악(胡樂)으로 섬기네.”
페르시아 여성을 가리키는 호부가 호장이라는 서역의 화장으로 매력을 떨치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 그 취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이 호장의 대표적인 아이템이 눈가를 군청색이나 남색으로 그리는 아이섀도인 것이다. 또 당나라 여성들이 퇴계 모양이라 해서 머리카락을 높이 땋고, 입술은 검은 기름을 발라 검은 입술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볼에는 혈훈장이라고 해서 연지를 반원 또는 원으로 칠하고 있다. 이 머리카락을 높이 땋아 올리는 것은 로마시대 여성들의 화장술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파이윰의 부인’이라는 1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것으로 보이는 이 로마시대의 초상은 이런 측면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 볼에 연지를 바르는 것도 장밋빛 볼을 강조하는 이집트 화장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화장술이 나중에 로마시대를 거쳐 서양 전역의 중세와 근세,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쉽사리 증명된다.
동양권에서는 오히려 아름다움의 기준이 여성의 몸매나 여성 고유의 매력에 따라 달라진 성격이 두드러진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대표적인 미인은 ‘허리가 가는 여성’이었고, 한나라 시대 대표적인 미인 조비연(趙飛燕)은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가녀린 여성’이었다. 조비연은 원래 이름이 조의주(趙宜主)였다. 그런데 배에서 춤을 추다가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물로 떨어지려는 것을 황제인 성제가 손으로 잡은 뒤 그 손 안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아 비연(나는 제비)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당나라 때 최고 미인으로 치는 양귀비는 대단히 풍만하고 큰 ‘글래머’였다. 당시의 미적 기준은 그런 글래머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움을 온천욕으로 가꿨으며, 여지라는 과일을 좋아했다. 여지는 중국식으로는 리치라고 발음하며, 좀 비싼 중국음식점에서 후식으로 나온다.
한편 하나라 때의 미인 포사는 그 찡그리는 표정 때문에 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되는 등 동양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좀더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짙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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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 오프 항해지도]</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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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생
- <화장술의 역사-시공디스커버리총서> 도미니크 파케/시공사(사진)
<구약성서-이사야서>

▶▶ 대학생 이상
- <클레오파트라-시공디스커버리총서> 에디트 플라마리옹/시공사
<고대문명의 여행-이집트> 일경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일본책)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 진순신/예담
www.kr.yahoo.com=(검색)=에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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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SOON]</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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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도움말씀 기다립니다.
okh1234@empal.com

▶ 다음호: 혁명가 1 - 스파르타쿠스(사진은 영화 <스팔타쿠스>에서 찾을 것. 주인공은 커크 더글러스)

▶▶ 다다음호: 혁명가 2 - 태평천국의 꿈, 홍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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