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검사 출신 변호사의 사형제 탐구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형수 출신 대통령에 이어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한국의 사형 집행은 계속 유보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유영철씨의 끔찍한 살인 행각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씨의 길고 지루한 재판 과정 내내, 그리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어려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극단의 악행에 극단의 형벌로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만큼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교양인 펴냄)의 지은이 스콧 터로는 검사 출신 변호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2000년 일리노이주 라이언 주지사는 사형 집행 일시 중단을 선포하면서 사형제 개혁을 자문해줄 ‘사형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책은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지은이의 기록이다.
터로는 피끓는 법학대학원생 시절 사형제 폐지론자였으나, 검사 시절 찬성론자로 바뀌었다가 변호사로 일하며 불가론자로 돌아선다. 그러니까 ‘백지’ 상태에서 위원회 조사를 맡은 것이다. 그는 사형폐지론자의 도덕적 신념이나 찬성론자의 사회학적 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미국법이, 인류의 법 체계가 ‘살인’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만큼 불편부당하고 보편적인 기준을 가질 수 있는가.
일관되게 사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피살자의 유족들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살인범이 여전히 생일을 맞이하는 것은 유족에게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법이 유족의 견해를 받아들여 사형을 내리는 순간,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할 처형에 어떤 유족에게 위안을 주고 어떤 유족에게 위안을 주지 않는지 판단할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또 사형은 극한의 악이 무엇인지, 그런 악을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오류 없이 밝혀내야 한다. 그러나 터로가 검토한 270개의 사형 판결에 아무런 기준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인종과 성별, 살인이 발생한 지역 등과 같은 변수들이 사형 선고 결정에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사형은 법의 가장 큰 승리, 바로 ‘속죄’의 가능성을 말살한다.
사형위원회는 세밀한 개혁안을 만들었지만,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많은 부분이 실현되지 못했다. 지은이는 개혁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궁극적인 사형제의 모순은 해결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터로가 언급한 두 가지 사례를 음미해보자.
1983년 시카고 교외 한 학교 서무과에서 근무하던 여인이 집에 돌아와 보니, 10살 난 딸이 보이지 않았다. 이틀 뒤 성폭행과 구타를 당한 딸의 주검이 발견됐다. 1984년 범인으로 크루스가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5년 진범 더건이 범죄를 자백한 뒤에도 검사는 끊임없이 크루스의 목숨을 노리고 소송을 전개했다. 1995년 말에야 크루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4년 당시 21살이던 토머스는 친구들과 함께 강도 행각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무능력하고 값싼 변호사들 때문에 연쇄살인범이나 강간살인범과 같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좌절에 빠져 범행마저 부인하며 판사의 격분을 샀던 토머스는 100년형으로 감형을 받자 법정에서 유족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그 일의 대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먼 미래라도 미래가 있다는 것이 이 젊은이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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