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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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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2050년, 찬란한 미래!

등록 2004-04-08 00:00 수정 2020-05-03 04:23

영국의 ‘독창적 사회주의자’가 설계한 유토피아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19세기 영국 사람 윌리엄 모리스(1834~96)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영화 에서 ‘질리도록’ 구경한 나무와 꽃과 열매가 얽혀들며 기하학적으로 퍼져나가는 ‘자연주의 벽지’ 디자인이나 수공예로 만든 장식적인 가구 등으로 디자인이나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정도다. 모리스는 영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던 ‘제2기 산업혁명 시대’에 살면서 기계 문명과 자본주의에 질식당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인·소설가·화가·디자이너·건축가·사상가로 ‘삶의 예술화, 삶의 자연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독창적인 사회주의자’였다.

(개마고원·1998)에서 그를 소개했던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이번에는 모리스의 를 (필맥 펴냄)로 번역해 냈다. 는 인간의 노동이 빠른 속도로 자본과 기계에 종속돼가고 사회주의 혁명의 전조가 유럽 대륙 곳곳에서 감지되던 19세기 말 모리스가 영국 사회주의단체 ‘사회주의자동맹’의 기관지 에 연재한 소설이다.
1890년 어느 겨울밤 ‘사회주의자 동맹’ 모임에서 혁명 뒤에 실현될 미래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윌리엄은 다음날 깨어나 보니 250년이 흐른 2050년의 찬란한 유월 아침 런던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혐오하던 집 앞 고철덩어리 현수교는 아름다운 아치형 돌다리로 바뀌었고, 매연을 내뿜던 공장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템스강을 건네준 뱃사공은 기뻐서 하는 일일 뿐이라며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윌리엄은 1952년 혁명이 일어나 2년여의 내전과 50년의 과도기를 거친 뒤 완전한 유토피아가 실현됐음을 알게 된다.
꿈 이야기 형식을 취한 이 글은 그가 평생 추구한 유토피아를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발달한 기계문명으로 자동화된 차가운 금속성의 세상 대신, 최소한의 필수적인 기계문명을 제외한 인공적인 것이 사라진 중세풍의 목가적인 세상이다. 거기에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도 없으며,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손으로 만들고, 이웃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땀 흘리는 창조적인 노동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이 책에 그려진 유토피아는 당시 서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의 에서 젊음과 이상주의적 열의에 가득 찬 두 소녀는 숙모 몰래 늘 를 갈색 종이에 싸서 읽으며 “지붕 밑 침실에서 몇 시간이고 마주 앉아 인생에 대해, 세계를 개혁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기 위한 단체를 구상한다.
책이 쓰인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중세적’ ‘자연주의적’ 전망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많은 사람들은 산업문명과 도시에 대해 피로를 느끼며 애증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점점 더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말려들어가며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삶을 짜내는 노동에 시달리다 이제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일자리마저 빼앗기고 있는 현대인들은 쉽사리 산업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하지는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 조용한 시골에서 살 것이라고 끊임없이 위안할 뿐이다. 편리함에 무조건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결단을 내린 사람들에게 ‘에코토피아’는 비현실적인 헛소리가 아닌 대안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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