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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처럼 사라진 1조원대 공약들



좋은예산센터와 공동분석 결과 16개 광역자치단체장 공약 37%가 이행 안 돼…

경기 안전급식 실행 계획·대구 재개발 펀드 ‘행방불명’
등록 2010-05-14 16:56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는 ‘안전한 학교 급식을 위한 4대 실행 계획’을 내놓았다. 당시 그의 공약집을 보면, 학교 급식 재료에 대해 도지사가 인증하는 급식품질인정마크제를 도입하고, 식중독이 발생한 위탁급식업체에 대해선 ‘2진 아웃제’를 실시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학부모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급식명예감시단’을 꾸리고,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안에 학교 급식 위생 상태를 수시로 검사하는 ‘안전급식 119팀’을 만들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안전한 학교 급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5월7일 경기도청 누리집에 전자책 형태로 올라있는 공약이행보고서를 살펴봤다. ‘안전한 학교 급식 실현’ 항목에서는 앞의 4개 공약 가운데 3개에 대한 이행사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전급식 119팀 사업에 대한 설명만 있었다. 3개의 공약은 어디로 간 걸까? 은 경기도청의 관련 4개과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담당 업무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나마 공약 추진 상황에서 ‘살아남은’ 안전급식 119팀 제도도 경기도청과 보건환경연구원 모두 자신들의 사업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과 시민단체인 ‘좋은예산센터’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의 공약 이행 상황을 분석한 결과, 제대로 이행됐다고 볼 만한 공약은 10개 가운데 6개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분석은 2006년 선거 당시의 공약 내용과 이후 각 지자체들이 내놓은 이행평가 보고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이행평가 보고서를 통해 지자체 스스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밝혔거나 이행평가 보고서에서 아예 누락된 공약이 10개 가운데 4개꼴로 나타난 것이다. 이행평가 보고서에 누락된 공약은 경기도의 사례처럼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살펴본 결과, 2006년 당선 직후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이 내놓은 공약 978개 가운데 이행되지 않았거나 이행평가보고서에서 누락된 공약은 368개였다. 전체 공약의 37.6%에 해당한다. 4년 전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제시한 공약 중 상당수가 슬그머니 사라졌거나 집행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헛공약’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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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지사, 말만 앞선 학교 급식 공약

김완주 전북지사가 4년 전에 내놓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도 경기도 학교급식 공약과 비슷한 예다. 김 지사는 2006년 선거운동 기간에 전북 익산과 새만금을 잇는 자기부상열차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해마다 1조원 이상의 경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놨다. 당시 건설교통부가 추진하던 자기부상열차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되면 약 4500억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는 설명도 덧붙었다. 그러나 2007년 1월 정부의 시범사업 연구용역에서 전북이 탈락하면서 공약은 물거품이 됐다. ‘헛공약’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김 지사가 당선되기 전부터 자기부상열차 사업이 타당성이 없다는 의견을 낸 곳은 다름 아닌 전북도청이었다. 2006년 1월 도청은 이 사업의 도입을 검토한 결과 “국비 50%를 지원받는 점을 감안해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밝혔다. 김 지사가 취임하면서 무리수를 둔 셈이었다. 올해 초 전북도청이 내놓은 공약 이행평가 보고서에는 자기부상열차 공약 내용이 아예 빠져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1조원짜리 ‘헛공약’을 냈다. 그는 2006년 선거운동을 하면서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1조5천억원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벤처·창업 투자 펀드 2천억원을 조성하고, 중소기업 구조조정 펀드를 3천억원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도시 재개발 펀드도 1조원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당선 뒤 와 한 인터뷰에서 “대구의 산업구조를 바꿔 미래형 첨단산업을 키워내겠다”고 밝혔다. 5월7일 현재 대구시청 누리집에 오른 공약 이행 평가자료를 보면, 벤처펀드와 중소기업 펀드는 각각 700억원과 1천억원이 조성됐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펀드 결성이 지연됐다”는 설명과 함께 공약 이행은 ‘완료’됐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공약을 이행 정도를 평가하는 ‘완료’ ‘정상 추진’ ‘부진’ ‘미착수’ 등의 항목 가운데 ‘완료’ 칸에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더욱 문제인 것은 공약한 펀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1조원짜리 도시 재개발 펀드 조성 사업이 이행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행평가 자료에 아예 빠져있다는 점이다. 대구시에 물어봤다. 시 관계자는 “후보자 시절의 공약 사항이 있을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은 떼어냈다”고 밝혔다. 이렇게 1조원 규모의 사업이 시민의 시야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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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뉴타운 공약이 이행됐다고?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지사직을 사퇴한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저소득층 4만5천 가구를 위해 인터넷 통신료를 지원해준다는 선거 당시의 약속을 어겼다. 그가 내놓은 공약집을 보면, 2007년부터 4년 동안 해마다 150억원을 이 사업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도청에서 예산의 100%를 대겠다는 재원 조달 계획도 세웠다. “농촌 및 저소득층의 소득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수집 능력의 제고가 요구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도청에서 내놓은 공약 이행평가보고서를 봤다. 이 사업이 시행됐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충남도청에 확인해봤다. 저소득층 정보화 교육에 지출된 액수는 2009년까지 23억원뿐이었다. 이 전 지사는 2006년 선거 당시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컴퓨터 구입을 위해 52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냈다. 이 예산도 공약 이행보고서에 없었고, 충남도청은 약속된 금액의 5%에도 못 미치는 23억원이 집행됐다고 밝혔다.

강원도에서는 복지 관련 공약이 ‘공약’(空約)이 됐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지난 선거에서 사회복지 예산을 올해까지 도 예산의 25%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올해 강원도의 사회복지 예산은 1조6824억원으로, 전체 예산(8조8232억원)의 19% 수준에 불과했다. 김 지사는 사회복지 예산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를 보면, 지난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강원도의 사회복지 예산은 19.4%(2744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의 복지 예산 평균 증가율인 23.9%에도 못 미쳤다.

사실 과 좋은예산센터의 이번 분석 작업에는 ‘허점’이 있다. 분석 대상인 978개 공약의 이행 여부를 일일이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 때문에, 공약 이행평가보고서에 나타난 지자체의 자체 평가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즉 지자체 스스로 이행됐다고 평가한 공약과 ‘추진 중’이라고 평가한 공약은 모두 이행한 것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광역자치단체가 자체 평가보고서에서 공약 이행 내용을 부풀리거나 사실을 왜곡해도 이번 평가에서는 공약이 이행된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렇게 공약을 지킨 것으로 평가된 610개 공약 가운데서도 ‘부실’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의 뉴타운 공약이 그런 예다. 지난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광역 뉴타운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세입자대책 등 빈곤층의 주거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4년이 지난 올해 서울시 누리집에 올라 있는 ‘공약관리카드’를 보면, “뉴타운 지구 내 공공의 역할 강화를 위한 수준 높은 촉진 계획을 수립했다”고 자평했다. 또 “Social Mix(주거지역에서 임대·일반분양·장기전세주택을 적절히 섞어 배치하는 정책)를 통해 세입자 간 위화감을 해소하고 쾌적한 커뮤니티 시설의 확보로 뉴타운에 대한 시민 반응이 좋음”이라고 평가했다. 이 자료는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이 낳은 갈등으로 지난해 1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에서 철거에 항의하던 5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 이후 작성된 것이다. 관대한 수준을 넘어 ‘비도덕적인’ 평가에 가깝다.

4년 전 광역단체장들이 내건 공약 중 이행되지 않은 것이 10개 중 4개꼴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걸린 지방선거 홍보물.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4년 전 광역단체장들이 내건 공약 중 이행되지 않은 것이 10개 중 4개꼴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걸린 지방선거 홍보물.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행율 높이려고 내용 슬쩍 바꾸기도

김관용 경북지사는 지난 2006년 7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당선됐다. 경상북도가 내놓은 공약이행평가 보고서를 보면, 일자리가 8만3천 개 만들어져 공약을 ‘완료’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노인 적합형 일자리를 2만5천 개 개발해 보급한다는 약속도 일자리를 3만6천 개 공급함으로써 ‘초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수치를 보면 실태는 많이 다르다. 국가통계포털(kosis.kr)을 통해 경상북도 고용 현황을 살펴봤다. 취업자 수는 지난 2006년 140만8천 명에서 지난해 137만8천 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경상북도의 공약 이행 평가 자료에는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일자리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는 공약 이행도를 높이기 위해 공약 내용을 슬쩍 바꾼 곳도 종종 있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4년 전 대구에 제2의 전시컨벤션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국비 478억원, 시비 등을 포함한 210억원을 들여 2009년에 건설을 완료하겠다는 구체적 복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대구시청 누리집에 오른 시장 공약 이행사항에는 제2전시컨벤션센터에 대한 내용은 없다. 대구시의 공약 이행 보고서를 보면, 사업 내용이 제2전시컨벤션센터가 아니라 ‘전시컨벤션센터 확장사업’으로 기록돼 있다. 2008년부터 4년 동안 대구 엑스코 건물을 확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공약 내용을 변경한 뒤 공약 추진 상황에는 ‘완료’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4년 전 “중소기업 직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지역별로 ‘중소기업병원’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그러나 공약평가보고서에서는 7개 병원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충상담실을 운영한다는 내용으로 뒤바뀌었다. 박성효 대전시장의 공약에는 장애아동·여성 재활지원센터를 구청별로 5개 설립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전시의 ‘민선 4기 공약사업 자체 평가’ 자료를 보면, 박 시장의 임기에 지어졌거나 완공될 재활센터나 병원은 3곳이다. 그런데도 대전시는 공약을 ‘100%’ 이행했다고 평가했다. 정우택 충북지사도 4년 전에 청주시 주중동 ‘밀레니엄타운’ 사업을 공약했다. 1998년 이 부지에 있던 종축장이 이전하고 남은 부지에 대규모 문화·체육 시설을 짓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도청은 이곳에 골프장을 지으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고, 올해까지도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충청북도의 공약이행평가 자료를 보면, 밀레니엄타운 사업은 ‘밀레니엄타운의 생태문화공간 활용방안 재정립’으로 이름이 바뀌어 ‘정상 추진’ 평가를 받았다.

채연하 좋은예산센터 연구원은 “2006년 당시 당선자들이 했던 약속 가운데 절반 가까이 외면당하고 지켜지지 않았다”며 “그마나 추진했던 사업도 알고 보면 부실하게 이행된 것이 많아서 유권자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약이행평가단을 구성해 정기적이고 내실있는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야별 공약 이행률
건설사업, 많이 약속하고 안 지켰다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지난 2006년에 내놓은 공약 978개를 분야별로 보면, 경제 관련 공약이 486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뒤로 복지(125개), 문화(106개), 사회간접자본(90개), 교육(69개), 행정(56개), 환경(41개) 관련 공약이 뒤를 이었다.
분야별 공약 이행률을 보면, 복지 관련 공약이 74.4%로 가장 높았다. 환경 관련 공약 이행률도 70.7%로 높은 편이었다. 반면 사회간접자본 관련 공약이 이행된 확률은 47.8%로 가장 낮았고, 경제 관련 공약 이행률도 59.0%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사회간접자본·경제 부분에서 약속이 지켜질 확률이 낮다는 뜻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어떤 형태든 ‘건설’ 사업과 연관된 공약을 추려보니, 역시 498개로 전체 공약의 절반(50.9%)을 넘어섰다. 건설 관련 공약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라남도였다. 전체 공약 109개 가운데 86개(78.9%)가 도로나 건물 등을 짓는 내용을 담았다. 인천(76.9%), 강원(71.9%), 경남(64.8%)에서도 건설 공약의 비중이 높았다. 반면 충북(17.9%), 경기(24.1%), 대전(29.0%)에서는 굴착기 소리가 비교적 적게 들렸다. 서울은 50.0%였다.
건설 관련 공약의 평균 이행률은 53.2%로, 전체 공약 이행률인 62.4%보다 낮았다. 건설 공약 가운데 예상되는 소요 예산을 표기한 비율도 44.6%로 절반에 못 미쳤다. 채연하 좋은예산센터 연구원은 “건설 공약 가운데서 지키지 못할 선심성 공약이 많이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광역단체 스스로 내린 공약 이행 평가
윤색하고 부풀려 평균이 98.1%
광역자치단체들이 스스로 내린 공약 이행 평가는 어떨까?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는 자체 공약 이행평가보고서에서 지키지 못한 공약은 아예 빼는 등 자료를 윤색하면서 이행 실적을 부풀렸다. 16개 광역자치단체가 낸 공약 이행평가 자료에서 ‘완료’와 ‘추진 중’으로 나타난 사업을 모두 공약 이행으로 치면, 전국 평균 공약 이행률은 무려 98.1%에 이른다. 4년 전 선거 당시 내놓았던 공약들을 기준으로 이행 여부를 살핀 ·좋은예산센터의 분석과 차이가 나는 이유다.
서울 등 11개 광역자치단체는 공약 이행률이 100%라고 자체 평가했다. 경기·전남·경북·강원도 모두 공약 이행률이 97%가 넘는다고 자평했다. 제주시만 이행률(94.7%)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제주시는 공약 이행 평가보고서에서 여성부지사직 신설 등 11개 공약에 대해 ‘부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스스로 이행이 부진하다고 평가한 공약의 개수는 나머지 15개 광역자치단체를 다 합해도 제주도 한 곳보다 적다. 제주도가 이상하거나, 나머지 15개 광역자치단체가 대부분 정직하지 못한 셈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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