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치러지는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비교적 선명한 구도와 이슈를 내보이고 있다. 함께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 선거가 ‘북풍’ ‘노풍’ 등 ‘외부 이슈’에 흔들리고 있다면,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친환경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교육계 ‘내부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 16개 교육감 선거구 중 12곳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일찌감치 ‘단일 후보’를 추대하면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선명해졌다.
전국에서 출몰하는 ‘제2의 김상곤’
“경쟁 교육만 강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불만이 쌓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비리에 속이 터져버렸죠.”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두 자녀를 둔 전은자 참교육학부모회 교육자치위원장이 ‘서울시교육감 민주진보 단일후보’를 만들기 위해 6개월 전부터 팔을 걷어붙인 까닭이다. 그의 시선은 서울 바로 옆, 경기도를 향했다. 서울시교육감이 비리로 얼룩진 사이, 지난해 4월 범민주 단일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친환경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을 추진했다. 전 위원장은 “서울에서도 ‘김상곤’을 만들자는 꿈”을 꾸게 됐다.
지난 1월 그와 뜻을 같이한 195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서울시 민주진보 교육감 범시민 추대위원회’를 꾸렸다. 2월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추대위는 단일후보를 정하기 위한 경선을 선언했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이삼열 전 숭실대 교수, 박명기 서울시 교육위원 세 예비후보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4월 이삼열·박명기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사퇴했고 곽노현 후보가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5월1일 곽노현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경기에서 부는 바람 서울에서 맞바람으로 화답해, 교육혁명의 태풍을 만들어가자”고 적었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강원·광주·경남·대구·부산·울산·인천·전남·전북·충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6·2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제2의 김상곤’이 출몰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처럼 ‘범시민 진보진영 단독후보’의 이름으로 교육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전체 16개 선거구 중 12곳에서 나왔다. 각 지역에서 전은자 위원장과 같은 이들이 팔을 걷어붙인 결과였다.
인천은 지난해 11월부터 ‘진보 단일후보’ 물색을 시작했다. 인천 지역 47개 시민단체가 모여 ‘인천 교육희망 일파만파 연석회의’를 결성했다. 교육자로서 믿을 수 있고 민주적이며 존경할 수 있는 후보를 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시민사회단체의 1차 추천을 통해 3명의 후보를 정한 뒤 토론회와 후보자 검증 과정을 거쳐 4월27일 이청연 예비후보를 ‘진보 단일후보’로 정했다. 인천교대를 졸업한 뒤 25년간 인천·경기 지역에서 교편을 잡아온 이 후보는 2007년부터 인천시교육위원회 교육위원으로 일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광주에서 ‘2010 광주시 교육감 시민추대위원회’가 발족했다.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전·현직 대표 등 120명으로 구성됐다. 12월22일 이민원 광주대 교수와 장휘국 광주시 교육위원이 후보로 추천됐고, 2월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후보가 “세종시 문제에 전념하겠다”며 사퇴해 장휘국 후보가 ‘범시민 후보’로 낙점됐다.
부산은 올 1월 ‘진보 단일화’의 발동을 걸었다. 1월14일 부산 지역 60여 개 시민단체가 ‘좋은 교육감 만들기 부산시민운동본부’를 꾸렸다. 2월26일 대상자를 공모해 2명이 후보 등록을 했으나 1명이 중도 사퇴하면서 박영관 후보가 ‘진보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전남에서도 1월28일 ‘교육자치 2010 후보 추대위원회’가 발족해, 3명의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거쳐 2월23일 장만채 순천대 총장을 ‘도민 후보’로 확정했다.
3월15일에는 충북 지역 100여 개 단체가 ‘충북교육희망연대’를 결성했다. 교육 현안에 대한 토론과 후보자 검증을 통해 김병우 충청북도 교육위원이 단독 후보로 추대됐다. 이 시기, 경남에서는 99개 시민단체가 모인 ‘좋은 교육감 만들기 경남연대’와 종교·학계·농민 대표 등으로 구성된 ‘희망자치 만들기 경남연대’가 출범했다. 4월 두 단체는 모두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위원을 ‘범도민 후보’로 선정했다. 전북 지역 80여 개 시민사회단체도 모여 후보 추대위원회를 구성하고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추대했다. 대구에서도 77개 시민단체가 모여 ‘범시민 진보 단일후보 추대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만진 대구시 교육위원이 단독으로 공모에 응해 ‘범시민 진보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지난해부터 범시민 교육감 후보를 물색하던 울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끝까지 애를 태운 경우다. 후보 물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2010 울산교육자치선거 범시민 추대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진보 후보군은 제한적이었다. 때마침 장인권 전교조 울산지부장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해직됐고, 그가 교육감 선거에 뜻을 두면서 범시민 후보로 선정됐다. 강원도에서는 지난 4월13일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강원민주통합시민행동’이 나서 여론조사 끝에 민병희 강원도 교육위원을 ‘진보 단일후보’로 결정했다. 이미 ‘범시민 후보’를 가진 경기도는 여유가 있었다. 지난 4월12일 ‘6·2 경기지방자치희망연대’가 지난 1년간 경기도 교육을 이끌어온 김상곤 현 교육감을 ‘좋은 후보’로 선정해 발표했다.
12개 지역 진보 단일후보를 하나로 묶는 끈은 ‘교육철학’이다. 이 12명의 진보 단일후보를 대상으로 무상급식, 일제고사, 특목고 설립, 학원 심야교습 제한, 공립유치원 설립 등 6대 교육 쟁점에 대한 소신을 물은 결과 대부분 일치하는 견해를 보였다. 6대 쟁점은 교육감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그 소신에 따라 정책적 변화가 가능한 영역이다.
우선 각 후보의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열정이 눈에 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지난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학기 중 무상급식을 추진하면서 전국적 이슈로 확산됐다. 곽노현 후보(서울)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 눈칫밥 급식을 줄 순 없다”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민병희(강원)·정만진(대구)·장인권(울산)·이청연(인천)·김병우(충북) 후보는 출마 이전부터 지역에서 급식 운동을 해오던 이들이다.
일제고사 방식으로 치러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반대 견해도 분명히 했다. 장휘국 후보(광주)는 “일제고사는 전국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를 통해 한 줄로 세우는 이명박식 경쟁교육의 극치”라며 “평가를 받는 학생이나 학부모, 학교에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정만진 후보(대구)도 “일제고사는 개인의 특기를 존중하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고, 실시 의도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했다.
특목고·자사고 설립에 대해선 ‘확대 반대’로 의견이 모아진다. 곽노현 후보(서울)는 “외고의 확대를 중단하고 관계 법령에 따라 특성화고 등 다른 학교의 형태로 전환시켜나가겠다”고 했고, 김상곤 후보(경기)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교 평준화와 학원 심야교습 제한에도 의지를 보였다. 박종훈 후보(경남)는 “고교 평준화를 비롯한 3불정책은 경쟁 위주의 대입 방식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보완책”이라며 “고교 평준화는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로 꼭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환 후보(전북)는 “새벽까지 공부하게 하는 심야학습은 청소년의 건강권, 인권 등 행복추구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학원의 심야학습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학교의 심야 자율학습도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육도 관심사다. 곽노현 후보(서울)는 “병설유치원 등 공립유치원을 1동에 1개씩 확충하도록 해 저렴하고, 질 높은 유아교육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공립유치원의 필요에는 동감하지만 우선 공·사립 유치원 간 교육환경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박영관 후보(부산)는 “공립유치원이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나, 사립유치원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한 지원·지도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16일에는 전국의 진보·개혁 성향 교육감·교육의원 후보 22명이 경기도교육청에 모여 핵심 정책과제가 담긴 ‘공동 제안서’를 발표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학습 준비물과 체험학습 무상 제공 등 무상교육 확대 △야간자율학습과 심야학원 금지 △미래학교·혁신학교 추진 등 11가지 정책이 공동 추진 과제로 꼽혔다. 5월 중 교육감 후보 12명은 서울에서 2차 모임을 열고 공동 정책을 구체화해나갈 방침이다.
진보 단일후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시민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지난 5월2일 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단일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3.6%에 이르렀다. 반면 보수 단일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는 15.1%에 그쳤다.
보수 쪽에선 “차라리 로또식으로 단일화하자”진보 단일후보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높아지자 보수 진영도 단일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5월7일 현재까지 단일후보를 내놓은 지역은 서울과 대구뿐이다. 5월6일 보수 성향 단체 300개로 구성된 ‘바른교육국민연합’은 경선을 거쳐 이원희(58) 전 교총 회장을 서울시교육감 보수 단일후보로 선포했다. 하지만 9명의 보수 성향 후보 중 4명만이 경선에 나서 ‘반쪽짜리 단일후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게다가 경선에 참여한 김호성 후보마저 경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구에서는 5월7일 ‘대구바른교육국민연합’이 경선을 거쳐 우동기 전 영남대 총장을 ‘보수 단일후보’로 추대했다.
인천에서도 ‘바른교육인천시민연합’이 출범해 5월1일 보수 단일후보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당일에 발표를 연기했다. 일부 후보에게 도덕성 의혹이 제기돼 단일후보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부산에서도 5월6일 보수 단일후보를 추대할 예정이었지만 5명의 후보 중 3명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데다 나머지 두 후보들도 평가위원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부산바른교육국민연합 관계자는 “후보들 사이에서 차라리 추첨 방식으로 ‘로또’를 뽑자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경기도에서도 강원춘(53) 전 경기교총 회장, 문종철(69) 전 수원대 대학원장, 정진곤(59)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조창섭(69) 단국대 대학원장 등이 보수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기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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