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충돌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봄남북관계가 불안하다. 누가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실감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평화는 산소와 같아서, 결국 사라지니 귀중함을 알 것 같다. 북한은 해서는 안 될 영토 폭격을 했고,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기는커녕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이 정부를 불안해하는 ...2010-12-22 16:28
좌절된 좌우연합의 꿈, 흩어져 맞은 독립1927년 2월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대강당에서는 ‘신간회’라는 조직의 창립대회가 열렸다. 회원 250명에 방청인까지 합쳐 1천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였다. 회장에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월남 이상재가 추대되었고, 부위원장에는 사회주의자 홍명희가...2010-12-16 14:39
돈과 힘이 앞서는 정치, 악의 씨가 뿌려지다1954년 11월27일 오후 6시. 지금은 서울시의회가 들어서 있는 중구 태평로의 국회의사당에는 숨 막힐 듯한 긴장이 가득했다.“재적의원 203명 중 가(可) 135표.”‘135’라는 숫자를 듣자 야당 의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부(否) 60표, 기권 6표, 무효 1표...2010-12-02 11:25
‘쌍팔년도식’ 손님맞이는 이제 그만~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미국의 시대는 저물고 중국의 부상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있음을, 그래서 세계 질서의 지각변동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그것이 성과 아니겠는가. 그리고 G20은 우리에게 국가의 품격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2010-11-25 15:33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30대 이상의 배구팬에게 1998년의 기억은 각별하다. 그해 2월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열렸다. 모기업의 부도로 팀 해체가 결정된 고려증권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대한배구협회의 지원으로 출전한 슈퍼리그 3차 대회 4강 진출전에서 고려증권은 마지...2010-11-04 11:37
김일성 조문 논쟁의 과거·현재·미래1994년 조문 논쟁은 교훈을 얻어야 할 역사다. 또한 북한 3대 세습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와 겹친다. 그리고 언젠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는 시점에 다시 벌어질 ‘미래’다. 1994년 조문 논쟁은 남북관계 악화를 가져왔다. 실패한 정책이었다. 김영삼...2010-10-28 17:08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다면정치인에게 ‘귀양살이’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 대중의 관심을 에너지로 삼는 그들에게 변방의 삶이란 곧 정치적 사망선고와 통한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에서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졌다. 그가 이끈 민주당도 졌다. 어려운...2010-10-14 14:44
여운형이 미군정의 민정장관이 됐다면1947년 7월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 파출소 앞에 있던 트럭 한 대가 갑자기 달려나와 여운형이 탄 차를 가로막았다. 사내 한 명이 차 위에 뛰어올라 두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총탄은 여운형의 심장과 복부를 관통했다. 극우 테러단체 ‘백의사’의 배후 조종을 받고 있...2010-09-30 10:55
2000년 대북 쌀지원을 하지 않았다면남쪽은 쌀이 남아돈다. 북쪽은 없어서 난리다. 남쪽은 남아도는 쌀을 처리하기 위해 골치가 아프다. 북쪽은 올해도 심각한 식량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남는 쌀을 북한 동포들에게 나눠주면 서로 좋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분단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남아도는 ...2010-09-08 11:02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지 않았다면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중략)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2010-09-03 19:22
1973년 일본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1973년 8월8일 오후 1시께.김대중은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 호텔 2212호실을 막 나서고 있었다. 일본에 와 있던 통일당 당수 양일동과 오찬을 겸한 면담을 마치고, 일본 자민당의 기무라 도시오 의원을 만나러 가던 참이었다. 순간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나이들이 그...2010-08-27 15:20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탕, 탕, 탕.’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중국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정부의 실력자인 재무상 코콥초프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이 쏟아졌다. 취재기자라며 일본 경찰을 따돌린 안중근이 쏜 것이었다. 이토는 응급처치를 받으며 누가 쏘았느냐고 물었다...2010-08-20 16:10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경제개방을 추진했다면,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개방된 도시에서 핵의 그림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개방과 핵개발은 상충되기 때문이다. 기회는 있었다. 2002년이다. 그해 7월1일 북한은 경제관리 개선 조처를 발표했다. 제한된 ...2010-08-13 15:48
1994년 작전통제권 온전히 환수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애써 찾아온 군사주권을 포기했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일정을 연기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군 원로, 보수 언론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그것이 좌파 정권의 산물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자주국방은 오...2010-07-23 19:22
6·25 때 북한군이 사흘간 서울에 머물지 않았다면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께, 옹진반도를 목표로 첫 공격이 시작된 뒤 몇시간 동안 38선 전역에서 북한군이 남진했다. 당시 북한군은 총 10개 사단 규모였는데, 7개 보병사단에 국경경비대, 예비사단 등을 합쳐 1개 사단 병력을 더 추가한 약 20만 병력이 ‘조국...2010-07-02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