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이야기하면, 종교의 교리는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라는 것은 그 종교의 창시자나 교리, 신앙 체계에 절대적 믿음을 갖고 따르라는 지시요, 인류의 보편적 도덕·윤리·규범을 지키라는 명령이다. 또 하지 말라는 것은 불신앙과 의심, 불경이요, 윤리 도덕과 어긋나는 원초적 욕망과 본능적 행동, 그리고 그 종교가 그은 각종 금기의 선을 넘어서는 일탈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교리는 하라는 것을 잘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잘 지키면 현세에서 큰 복을 받거나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지만, 그 반대면 죄인이 되어 인과응보의 벌을 받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쩐 일인지 하라는 것은 행하기 싫어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어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 장면에 포도주는 주제로 등장한다.
이 중에서도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듯한, 신도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설정한 듯한 종교적 금기는 항시 그 선을 넘고 싶도록 유혹한다. 금기는 종교적 관습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것을 말한다. 금기로서 제한 또는 금지하는 대상 중에는 술도 있다. 왜 술이 여러 종교에서 금기의 대상이 되었을까?
술은 고대사회의 제사의식에서 성스러운 음료였다. 고대인들은 제사에서 희생으로 잡은 짐승의(또는 사람의) 고기와 피를 신께 바침으로써 풍요와 안녕을 빌고, 신의 힘을 빌려 재해·혼돈·무질서를 막으려 했다. 이후 사회경제의 발전과 함께 고기에 곡식과 과일 등 다양한 생산물이 더해졌다. 또한 피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술로 대치돼 신(神)만이 아니라 제상 아래 인간도 나눠 마시게 됨으로써 술은 성(聖)과 속(俗) 모두에 걸치는 존재가 됐다. 그리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라는 이원론적 대립에서 속된 것은 부정으로 간주되고, 그래서 속된 인간이 마시는 술에 특정한 제한을 가하는 금기가 걸리게 된 것이다.
세계 5대 종교에서 술을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강도를 보면, 이슬람교-불교-힌두교-기독교-유교 순이다. 이슬람은 원칙적으로 철저한 금주를 명하고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술은 “하늘과 땅, 어머니와 아내를 구별할 수조차 없게” 하고 “맑은 것과 혼탁한 것도 구별하지 못하게 해버리기” 때문에, 그리고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사회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철저한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금주령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는 아랍 21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5개국뿐이다. 불교는 출가해 승려가 된 사미나 재가의 신도들이 필히 지켜야 할 오계의 다섯 번째 계율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나, 곡차(술이 아닌!)를 마신다. 힌두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금주를 명하고 있지만, 카스트 제도 속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제한을 받지 않으니 금주령은 있으나 마나.
성경은 모세의 십계명을 비롯해 어디에서도 금주를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숱한 구절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열매, 포도주를 긍정적인 비유와 상징물로 이야기한다. 복음서는 두 번이나 포도주를 주제로 삼았다. 가나안의 결혼잔치에 참석한 예수는 변질된 포도주를 정화시킴으로써 잔치를 영원불변의 완벽함으로 만든다. 최후의 만찬 때에도 포도주가 등장한다. 예수는 잔을 들고 제자들에게 “이 잔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온 누리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교리보다는 해석을 통해 술음 금지한다. 가톨릭은 술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반면 개신교는 금주 쪽이 많다. 그러나 가톨릭을 뛰쳐나와 종교개혁에 앞장선 캘빈이나 루터도 술 앞에선 맥을 못 추던 사람이었으며, 금주법 시대 미국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핑계 삼아 매년 수백만 갤런의 포도주를 마셔댔다.
유교에서 술은 제사 의식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금지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유교는 술 마시는 데 정교한 격식과 예법을 두어 절제된 음주문화를 유도하고 있다. 공자가 이미 2500여 년 전에 “오직 술만은 양을 정하지 않고 마시되, 취하여 난잡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합리적이고 타협적인 음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술에 관한 한 유교의 입장이 가장 그럴듯하다.
김학민 음식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교황의 반지’ 2개 받은 한국인 추기경…강도 축복해주고 생긴 일
[단독] 윤석열 검언유착 수사 방해 증언한 검사장 ‘보복징계’ 논란
국힘 4강, 안철수 되고 나경원 안 된 이유 [뉴스뷰리핑]
유시민 “이재명, 내란 전우애 얻고 지지율 압도…강세 안 꺾일 것”
사흘간 심리 두 번…대법 ‘이재명 재판’ 대선 전 확정선고 주목
“개는 키우던 사람이 키우라”던 윤석열…키우던 ‘투르크 국견’ 동물원에
교황이 남긴 전 재산 14만원…“부족함 없었습니다”
손학규, 계엄 두둔하며 “한덕수, 위기 대응력 어떤 후보보다 낫다”
검찰·경호처에 막힌 윤석열 ‘내란 수사’…커지는 특검론
17년전 ‘소외된 외침’ 그대로지만…국힘 김예지는 무릎사과, 전장연엔 후원금 봇물